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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w: 고린도후서 강해 15(고후 8:16-24)

2008년 6월 18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15
본문: 고후 8:16-24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은 고로 더욱 간절하니라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지난 주는 연보가 주제였는데, 그 중에서도 연보의 기능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친 연보는 하늘에 올라가지 않고 이 땅에서 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입니다. 하늘에서는 연보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연보를 접수만 하실 뿐이고, 이 땅에서 교회로 하여금 사용하게 하십니다. 연보를 어떤 용도로 집행하게 하시냐면, 지난 주에 살펴본 14절의 말씀처럼 이 세상을 평준케 하는 데 쓰게 하십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게 하는 데에 쓰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치는 헌금이 구제비로 잘 쓰여서 분배가 균등하게 이루어짐으로 빈부격차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시며, 경제적 약자나 소외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헌금의 용도요 주님이 바라시는 헌금의 본래적인 취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양극화 현상이 고착됩니다. 이것은 결국 교회의 연보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에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있다면 거기에 헌금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평이 없고 불만이 없고 감사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각하면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사회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불안정한 이유가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촛불집회에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을 겁니다. 평준화가 안 되면, 분배 문제가 잘못되어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공동체가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헌금은 구제금이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와 고아를 돕기 위해 헌금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헌금이 이런 데에 쓰지 않고, 교회 자체를 유지하는 데 쓰입니다. 안 그래도 가진 것이 많은데 자꾸 교회에만 투자하니까 교회만 비대해지고 상대적으로 약자와 소외자만 생겨납니다. 그러니 교회가 비판을 받는 겁니다. 교회의 예산을 모두 내부에만 쏟아부으니까 교회만 기름져가고 사람들은 교회에 위화감을 느낍니다. 지금 교회의 문제는 연보의 문제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이 본래 제정하신 연보의 순기능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헌금의 본래 취지에 맞게 헌금을 관리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연보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파산에 직면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마게도냐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힘에 넘치도록 기쁘게 연보를 했는데, 이것을 고린도 교회의 헌금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야 하는데 이 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헌금을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 헌금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디도에게 맡깁니다. 16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20절을 보면 당시 헌금의 규모가 거액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현금을 지니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배달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는 도중에 이런저런 변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할 수 있기에,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일을 맡길 것인가는 중요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헌금관리는 중요합니다. 20절입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연보는 당시나 지금이나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사고가 터집니다. 21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헌금관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조심해야 하지만, 사람 앞에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양심을 잘 지켜야 하고, 사람 앞에서는 훼방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헌금관리는 누구를 집행자로 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바울이 직접 가지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울은 목회자입니다. 직접 헌금을 만지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직접 관리하지 않고 교인들 중에서 신실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헌금을 관리하고 집행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오해의 여지를 사전에 막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디도를 택했습니다. 디도는 이런 사람입니다. 23절입니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디도는 바울 개인에게나 교회적으로나 하자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디도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의 친척이라고 알려져 있고,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1차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사람이고, 고린도후서를 고린도 교회에 전달한 사람이고, 바울을 대신해 고린도 교회를 지도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보증하고 당시 모든 교회들이 신용하는 사람이 디도였습니다. 교회 헌금은 이런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행정절차상으로나 구조상으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잘못되면 소용없습니다.

초대교회가 헌금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했는지를 한 번 보십시오. 디도가 아무리 신뢰할만해도 디도 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18-19절입니다: “[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디도 외에 또 한 사람을 택해서 보냈습니다. 또한 22절입니다: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은 고로 더욱 간절하니라.” 그러니까 적어도 디도 외에 두 사람을 더 택해서 세운 것입니다. 22절에 나오는 마지막 형제는 검증과정을 훨씬 더 많이 거친 것으로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가 헌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직접 관리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도 보면 재정부장이 있고, 회계가 있고, 계수위원이 따로 있습니다. 헌금은 좋은 의미에서 경계하고 감시하면서 각기 역할을 나누어서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헌금관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투명성입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경우를 보면 목회자가 자기 사적인 금고처럼 교회재정을 집행합니다. 아무런 회의나 보고 없이 목회자 임의로 예산을 집행합니다. 계정을 구체적으로 잡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잡아서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경우를 보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이었음에도 얼마나 투명하고 확실하게 관리했는지를 볼 때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대로만 한다면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겁니다. 목회자는 헌금에 개입하지 말고, 신뢰받는 사람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투명하게 관리하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은 21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하나님 앞에서는 신앙양심을 지키고, 사람들 앞에서는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헌금이 은혜가 되고 교회에 덕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최일도 목사님이 하는 다일공동체가 처음에는 청량리역 앞에 상가건물에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 주일예배 설교를 한 번 간 적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광고시간에 최 목사님이 광고시간에 그 교회 회계를 맡고 있던 집사님이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는데, 집에서 근신하라는 조치를 광고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이웃교회에서 계수하는 과정에서 헌금이 자꾸 증발해서 목사님이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욱 기본에 충실하고 성경말씀에 성실함으로 연보로 인한 시험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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