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5w: 고린도후서 강해 16 (고후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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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5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16
본문: 고후 9:1-8
[1]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주에 헌금을 누구에게 맡겨 취급하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철저하게 사람을 뽑고,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해서 헌금을 관리하는 것을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보다 초대교회가 헌금을 더욱 신중하게 관리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디도 이외에도 교회에서 칭찬받는 두 사람을 더 선정해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전달하게 했습니다. 생각보다 헌금사고가 많습니다. 현금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마귀의 타겟입니다. 8장 20절 말씀처럼 아무도 거액의 연보로 인해 훼방 받는 일에나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21절처럼 주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 선한 일에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은 9장입니다. 전반부의 주제는 참 연보란 어떤 것이며 어떤 의미인가입니다. 연보도 연보나름입니다. 연보라고 다같은 연보가 아닙니다. 참 연보가 있고 억지 연보도 있습니다. 참 연보는 이런 것입니다. 3-5절 이하입니다: “[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또한 7절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참 연보는 미리 준비하는 연보입니다. 또한 즐겨 내는 연보입니다. 반면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내거나 체면 때문에, 강요 때문에 내는 연보는 억지 연보입니다.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도 즐겨 내고, 봉사도 즐겨 해야 복된 헌신입니다. 억지로 하거나 강요해서 하면 이것은 억지 헌신입니다. 이것은 결코 누구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참 연보와 참 헌신을 받으십니다. 연보니 헌신이니 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 바치는 겁니다. 그런데 준비되지도 않고, 기꺼운 마음으로가 아닌 무성의하고 인색하게 바친다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무슨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억지 헌금과 억지 헌신을 열납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헌금도 반드시 심은대로 거둔다는 원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6절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연보는 씨앗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납니다. 헌금도 이 원리의 적용을 받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애쓴 만큼 거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씨앗을 힘껏 뿌리게 하십니다. 그래야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연보를 줄이면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준비된 연보를 해야 합니다. 왜냐면 연보는 축복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아무리 보릿고개가 심해도 절대 씨는 먹지 않습니다. 종자를 먹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힘들수록 종자관리는 더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8장 1절 이하를 보면 마게도냐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넉넉한 중에 헌금한 것이 아니고, 환난과 시련 가운데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했습니다. 심지어 극한 가난 중에 자기의 힘에 넘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헌금이 참 연보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분수에 넘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게도냐 여러 교회들이 제대로 헌금을 했습니다. 왜냐면 헌금은 축복의 씨앗이고,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과부가 자기 전 재산의 100 퍼센트, 동전 두 렙돈을 헌금궤에 넣는 것을 보신 주님이 그 과부를 비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잘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주님은 헌금의 모범으로 그 과부의 헌금을 제시하셨습니다. 어려울수록 최선을 다해 뿌려야 풍성한 수확이 약속되기 때문입니다. 원색적으로 말해 투자한 것입니다. 세상에 투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투자하면 확실합니다. 반드시 거둡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마지막으로 연보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심어야 합니다. 한 번 심으면 한 번을, 두 번 심으면 두 번을, 평생 심으면 영원히 거둡니다. 자연의 순리요 이치임과 동시에 헌금의 원리입니다. 해외에 나가있는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선교비의 문제입니다. 요즘은 제도가 상당부분 개선이 되었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선교비의 문제는 여전합니다. 교회나 개인 스폰서가 처음에는 평생을 지원할 듯이 약속해 놓고, 시간이 좀 흐르면 지원을 끊습니다. 그래서 현지 교회에서 계획적으로나 장기적인 사업을 하지 못합니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을 도울 때 작은 돈을 약속합니다. 월 5불, 많아야 10불을 하는데, 대를 이어 지원합니다. 그러므로 미국 사람들이 선교헌금을 작정한다고 하면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교헌금을 작정하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구제든 봉사든 하면 멋나게 하고 싶어서 벼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이지만 성실히 지속적으로 끝까지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중에 돈 벌어 양로원 짓고 고아원 짓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 작은 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후원하십시오. 그래야 그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원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바라십니다. 조석(朝夕)으로 변하면 도움이 안 됩니다. 지속적으로 봉사하고 후원하고 연보하는 사람이 평생풍성한 수확을 거둡니다. 이것이 참 연보고 참 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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