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4w 신명기 강해 32(신 11: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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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w 신명기 강해 32
신 11:18-32
[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21]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2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23]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2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31]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 [32]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
본문의 핵심은 26절입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고 무엇이든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택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의지를 발동해서 복을 선택할 수도 저주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자유가 원초적으로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우리의 자유를 선택하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든 그렇지 않든 아담과 하와의 자유였습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는 쪽으로 자유의지를 발동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낙원에서 추방한 것입니다. 선악과가 그토록 위험천만한 것이라면 왜 하나님은 그것을 숨겨두지 않고 동산 중앙에 두셨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우시는 겁니다. 26절의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저주는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이 아예 저주를 두지 않으셨다면 불행도 없을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복을 선택하면 마냥 행복한 것입니다. 27-28절입니다.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이렇게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복을 결단하면, 그 결단에 걸맞은 행복을 보장하시고, 저주를 택하면 저주를 결단한 행위에 따른 불행을 겪게 하십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명령을 듣는다, 순종한다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18절 이하입니다. “[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게 하나님의 계명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게 곧 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쉐마입니다.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쉐마는 하나님의 율법을 이렇게 지키고 행하라고 하신 구체적 실천 강령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두라는 겁니다. 심장에 각인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가장 우선적인 명령입니다. 다음은 그 명령을 자녀들에게도 전수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자기의 심장에 깊이 각인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음 세대에 쉬지 말고 열심히 가르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쉐마를 포기하지 않아서 복 받았습니다. 2000년이 넘도록 디아스포라로 방랑하며 다니며 살았지만 쉐마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에게 악착같이 가르치고 전수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계 어디에서 살든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생활화하라는 겁니다(20절). 이것은 항상 쉐마를 기억하고, 집에서도 나가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쉐마의 핵심 내용입니다. 우선 본인의 심장에 각인하고, 후손에게 전수하고, 항상 실천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쉐마의 가르침대로 지키면 복되다는 겁니다. 우리 앞에 복을 선택한다는 것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입니다.
쉐마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받들며 살면 이것이 곧 복이 된다는 것인데, 그 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우리에게 무수한 적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적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들을 제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적들은 우리에 비하면 골리앗만큼이나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앞의 적을 제압하사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물리치고 그들 나라를 차지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쉐마의 분부대로 준행하면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25절 하반절입니다.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나님이 적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강하게 느끼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약속은 24절입니다.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가 땀 흘린 만큼의 보람을 반드시 거두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수고만 하고 아무런 수확도 올리지 못하는 허탈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살아가면서 매사에 성공만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그야말로 우리가 밟는 땅이 우리 소유가 됩니다. 우리 앞에 놓인 복을 결단할 때 받는 어떤 은혜, 어떤 행복을 누리게 됩니까? 첫째는 우리 앞의 적을 제압하고 둘째는 우리가 밟는 땅이 다 우리의 것이 되게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고 축복을 선택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가 유언과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퍼포먼스를 하나 하라고 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가나안 땅 중심부에 있습니다. 이 두 산은 언덕 수준이 아니라 제법 높습니다. 그리심산은 854m, 에발산은 919m입니다. 이 두 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은 저주를 선포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우리 앞에 복과 저주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심산은 숲이 있는 산이고, 에발산은 바위산이라고 합니다. 이 두 산을 보면서, 또 이 두 산에 올라 복과 저주를 선포하면서 언제나 우리 앞에 놓인 복과 저주가 있으며 복을 선택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운명,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연은 없습니다. 순간순간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에 대한 열매를 딸 뿐입니다. 모든 게 우리의 자유의지로 결단한 겁니다. 항상 그리심산과 에발산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느 산을 오를 것인가? 에발산을 선택한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심산을 선택하고 그 산을 오르라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32절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 축복의 산 그리심산에 오르라는 겁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그리심산쪽으로 발동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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