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9w 신명기 강해 17(신 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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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9w 신명기 강해 17
신 5:12-21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19]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20]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지난주에 이어 십계명을 계속 봅니다. 오늘은 두 개 돌판 가운데 첫 번째 돌판의 마지막 계명인 4계명부터입니다.
12절 이하를 다시 봅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그 어떤 계명보다 안식일 계명은 말씀이 깁니다. 너뿐 아니라 네 가족, 객, 가축까지도 안식일을 지키게 하라고 합니다. 안식일의 중요성과 지키되 철저히 지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시고 이레째 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쉬신 날을 굳이 우리가 쉬어야 하며, 왜 그날을 우리는 거룩한 날로 기념해야 합니까? 안식일이 왜 성일입니까?
안식일은 단순히 하나님이 쉬셨기에 우리도 따라 쉬는 맹목적인 날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쉬셨습니까? 하나님이 창조 때 완벽하고 완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쉬신 것은 더는 창조할 게 없어서 쉬신 겁니다. 이 너무도 완벽하게 창조하셨기에 창조를 종료하신 게 이레째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노동에서 손을 떼고 하나님의 완벽하신 창조사역을 찬양하며 기리는 게 안식일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안식해야지 노동하면 안 됩니다. 안식일에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창조행위의 불완전함을 고백하는 꼴이 됩니다. 안식일에 쉬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창조를 내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성일로 지키면 복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안식일 성수의 의미입니다.
안식일을 복음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게 주일입니다. 왜 주일입니까?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입니다. 주일과 안식일이 어떤 관계가 있기에 안식일이 주일로 이행되었습니까? 안식일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전하고 완벽하게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일입니다. 주일은 주님이 우리의 죗값을 다 해결하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완전하고 완벽하게 성취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구약의 안식일보다는 복음적 성일인 주님의 부활하신 날을 성일로 지키는 게 맞습니다. 복음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율법적 성일인 안식일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주일도 안식일처럼 지켜야 합니다. 주님이 이룩하신 구원이 그 어떤 다른 것도 필요하지 않는 완전한 구원이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구원이 완전하고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쉬면서 주님의 구원의 완전성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주일, 안식일에서 주일로 옮아간 것을 잘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두 번째 돌판입니다. 여기에는 6개의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사람에 관한 계명입니다.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 사랑이고, 두 번째 돌판은 이웃사랑입니다.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 제5계명이 부모공경입니다. 16절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계명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보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십계명 가운데 유일하게 복이 담보되어 있습니다. 이후 나머지 계명은 다 외마디 계명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런 계명들을 더 철저화하며 복음적으로 재해석합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은 형제를 미워하는 게 이미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율법은 아무리 사람을 미워해도 실제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을 보십시오. 복음은 실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도 남을 미워하면 이미 그 사람은 살인죄를 범한 것입니다. 살인죄는 미움이 동기이기에 결과가 어떻든 미움이 그 동기면 살인과 같다는 겁니다. 복음이 훨씬 더 엄격하고 철저하며 본질적입니다. 율법은 결과를 보지만 복음은 동기와 그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간음도 마찬가집니다. 율법은 성추행을 해야만 문제가 되지만, 복음은 음욕부터 이미 간음입니다. 도적질도 마찬가지고, 이웃의 것을 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집니다. 마음 속에 이미 도둑질할 마음, 이웃의 것을 탐하는 것부터 문제가 됩니다. 주님은 네 오른눈이 너를 실족케 하면 그것을 빼버리라고 하셨고, 네 오른손이 실족케 하면 찍어내라고 하십니다. 근본적인 동기를 제거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든 실제 살인만 안 하면, 간음만 안 하면, 도둑질만 안 하면 되는 것보다 마음부터 문제 삼는 복음이 더 철저합니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나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나 실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루터는 주석을 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새가 내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새가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악한 생각이 순간 내 머리를 스칠 수는 있다는 겁니다. 나로서도 속수무책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다 눈과 귀가 있기에 보고 듣는 순간 때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머리를 스칩니다. 불가항력적입니다. 그러나 그 악한 생각을 집요하게 붙잡고 속으로 악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실행으로 옮겨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마틴 루터의 주석과 해석이 복음적 율법을 적용하는 데 좋은 모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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