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2w 신명기 강해 13(신 4: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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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2w
신명기 강해 13
신 4:41-49
[41] 그 때에 모세가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42] 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43]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4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45]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46]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47]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48] 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49] 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이니라
오늘 주제는 요단강 동편의 도피성입니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율법 교육을 하는 한편, 틈틈이 다른 필요한 조치를 취했는데, 그중 하나가 도피성을 설치한 것입니다. 도피성은 총 6개입니다. 요단강을 기준으로 요단강 동편에 셋, 요단강 서편에 셋을 설치했습니다. 동편의 도피성 셋은 모세가 설치하고, 서편의 셋은 여호수아가 설치했습니다. 요단강 동편의 세 도피성은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입니다. 베셀은 르우벤 지파를 위한 도피성이고, 길르앗 라못은 갓지파, 바산 골란은 므낫세 지파를 위한 도피성입니다. 이들 지파는 요단강 동편 땅을 배분받았습니다. 요단강 서편의 도피성은 게데스, 세겜, 헤브론입니다. 총 48개의 성읍 가운데 절묘한 위치 6곳을 정해 도피성을 세운 겁니다.
팔레스틴 어느 성읍에서든 도피성을 가려면 하룻길만 가면 됩니다. 어느 성읍이든 반경 32km 내에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도로도 잘 되어 있었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도피성이란 표지판도 세워놓고, 청소, 양식 비축 등을 잘 해 놓았습니다. 도피성 제도는 한 개인의 인권을 위한 제도였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창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율법입니다. 억울한 사람을 보호하라는 겁니다. 정착 후 분쟁이나 다툼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인권유린 상황의 발생을 미리 예견하고 도피성을 세운 것입니다.
도피성(미크라트)은 어떤 제도입니까? 살인죄에 대한 형벌은 다른 그 어떤 징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살인죄에 대한 처벌이 가벼우면 그 사회의 정의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사회, 나라나 살인죄에 대한 벌이 가장 중합니다. 살인죄에 대한 처벌이 혹독한 만큼 절대 억울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의도적 살인과 과실치사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도피성은 중한 죄를 지었으되 본의 아닌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한 곳입니다. 과실치사한 사람이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재판에 응하게 한 제도가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억울한 살인자가 도피성에 피신했다 해도 그 성 안에 있으면서 반드시 재판을 받으며 소명해야 합니다. 소명을 과실치사가 아니면 그를 끌어내 죽입니다. 억울한 사람만 보호하는 겁니다. 다음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피성에 피신한 사람이 도피성에 있지 않고 이탈하면 율법의 보호를 못 받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해 도피성에 피신해 있던 사람은 무조건 사면입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죄를 사했다는 대속사상 때문입니다.
도피성이 뜻하는 복음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 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다는 게 인간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단강 건너기 전에 도피성부터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죄는 엄격히 다스리되 그 재판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도피성 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권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이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동기와 과정입니다. 결과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과실치사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가슴에도 한이 맺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공명정대합니다. 이스라엘이 공의롭게 재판하지 못했기에 선지자를 통해 늘 책망을 들었습니다. 옛날 도피성은 오늘날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노아시대의 방주일 뿐만 아니라 도피성입니다. 우리가 죄 지으며 살다가 도피성으로 피했습니다. 교회는 확실히 마지막 시대의 방주이자 도피성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품입니다. 주님 자신이 도피성 되심의 고백이자 선언이 바로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은 ‘주는 나의 반석, 산성, 요새, 피난처, 방패시다’고 했습니다. 피난처가 도피성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그 대제사장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 피한 자들은 사면복권됩니다. 사실 우리가 그 혜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마련된 사면복권의 복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이게 바로 칭의입니다.
도피성 제도와 사상, 의미가 우리에게 큰 깨달음과 은혜,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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