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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w: 예레미야 강해 77(렘 48:26-47)

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수요성경공부 http://thegreen.tistory.com
2011년 2월 16일 예레미야 강해 77
본문: 렘 48:26-47

[26]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 거리가 되리로다 [27]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도둑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네 머리를 흔드는도다 [28] 모압 주민들아 너희는 성읍을 떠나 바위 사이에 살지어다 출입문 어귀 가장자리에 깃들이는 비둘기 같이 할지어다 [29]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의 노여워함의 허탄함을 아노니 그가 자랑하여도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도다 [31] 그러므로 내가 모압을 위하여 울며 온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리니 무리가 길헤레스 사람을 위하여 신음하리로다 [32] 십마의 포도나무여 너의 가지가 바다를 넘어 야셀 바다까지 뻗었더니 너의 여름 과일과 포도 수확을 탈취하는 자가 나타났으니 내가 너를 위하여 울기를 야셀이 우는 것보다 더하리로다 [33] 기쁨과 환희가 옥토와 모압 땅에서 빼앗겼도다 내가 포도주 틀에 포도주가 끊어지게 하리니 외치며 밟는 자가 없을 것이라 그 외침은 즐거운 외침이 되지 못하리로다 [34] 헤스본에서 엘르알레를 지나 야하스까지와 소알에서 호로나임을 지나 에글랏 셀리시야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부르짖음은 니므림의 물도 황폐하였음이로다 [35] 여호와의 말씀이라 모압 산당에서 제사하며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를 내가 끊어버리리라 [36]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나니 이는 그가 모은 재물이 없어졌음이라 [37] 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되었고 모든 사람이 수염을 밀었으며 손에 칼자국이 있고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 모압의 모든 지붕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니 내가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어찌하여 모압이 파괴되었으며 어찌하여 그들이 애곡하는가 모압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렸도다 그런즉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사람의 조롱 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리로다 [40]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의 날개를 펴리라 [41]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4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닥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 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 [47]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의 심판이 여기까지니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치시겠다고 하신 모압의 구체적인 죄악과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하나님의 심판의 수위(정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선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벨론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모압을 포도주에 취하게 하여 그가 토한 것 위에 뒹굴므로 남의 손가락질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왜냐면 모압이 여호와 앞에서 교만하게 굴었고 이스라엘을 조롱했기 때문입니다(26-27). 모압의 가장 큰 허물은 교만입니다. 29절도 보십시오.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모압은 심히 교만했습니다. 그러니까 교만의 모든 품목이 다 동원된 겁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고 강하고 지위가 높아도 하나님 앞에서 오만하게 굴고 시위하고 거만하게 으스댈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교만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겸손한 자는 한없이 높이시지만 교만한 자는 반드시 쳐서 저 밑바닥에 추락시킵니다. 그야말로 자기가 토한 것 위에서 뒹굴게 하십니다. 주님은 겸손의 화신이요, 사탄은 교만의 화신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겸손의 화신이신 주님의 분신이지만, 교만한 사람은 교만의 화신인 사탄의 분신입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이렇게 간주하십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참혹한 부끄러움을 겪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교만입니다. 

그 다음은 방탕입니다. 32절입니다. “십마의 포도나무여 너의 가지가 바다를 넘어 야셀 바다까지 뻗었더니 너의 여름 과일과 포도 수확을 탈취하는 자가 나타났으니 내가 너를 위하여 울기를 야셀이 우는 것보다 더하리로다.” 여기에 나오는 십마는 모압의 국경도시로서 땅이 비옥했습니다. 특별히 포도가 많이 생산되어 포도주 주산지였습니다. 그 가지가 바다를 넘어 야셀까지 뻗었다는 얘기는 이 십마에서 생산되는 포도주가 해외로까지 널리 수출되었다는 뜻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이 십마산 포도주를 마시고 늘 방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기쁨과 환희를 빼앗으십니다. 포도주 틀에서 포도주가 끊어지게 하겠다는 겁니다. 34절에 보면 십마 주변의 여러 도성이 나옵니다. “헤스본에서 엘르알레를 지나 야하스까지와 소알에서 호로나임을 지나 에글랏 셀리시야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부르짖음은 니므림의 물도 황폐하였음이로다.” 이런 도시들이 늘 포도주를 마시고 환락을 즐겼던 도성들인데, 하나님이 이제 포도주 틀에서 포도주를 끊어지게 하셔서 그들의 모든 기쁨을 앗아가시며, 심지어 물도 황폐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최악의 기갈을 당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방탕이 모압의 두 번째 죄악입니다.

세 번째는 우상숭배입니다. 3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 모압 산당에서 제사하며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를 내가 끊어버리리라.” 모압 사람들이 그들의 산당에서 분향한 신은 그모스였습니다. 그모스는 몰록처럼 인신(人身)을 요구하는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아기를 그모스 신당에서 바쳤습니다. 다음 장인 49장에 가면 암몬이 나오는데, 암몬의 신도 그모스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고 하신 것을 두고 여호와 하나님도 인신예배를 요구하는 신이라고 주장합니다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이삭 사건은 오히려 하나님은 인신예배를 요구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하자 그것을 막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중심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피, 동물의 피에 목마른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모압과 암몬의 신인 그모스는 몰록처럼 인신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그모스를 섬겼던 모압과 암몬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46). 우상숭배를 하는 백성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징계하셨습니다. 

이런 죄악을 범했던 모압에 대해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준엄하게 심판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모압을 심판하셨는지 보겠습니다. 38절입니다. “모압의 모든 지붕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니 내가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을 심판하시되 아주 박살을 내시겠다는 뜻입니다. 도공들이 공들여 그릇을 만든 후 가마에서 구워냅니다. 흙가마에서 도기를 꺼내어 도기를 꼼꼼히 살펴 아주 조그마한 하자가 있어도 미련 없이 깨트립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모압을 심판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42절 하반절처럼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깨트린 도자기를 어찌 복원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41). 산고는 최악의 고통인데, 그것도 한 번에 그치는 게 아니고 일정기간 계속되는 고통입니다. 모압의 고통도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도자기 깨트리는 것처럼 한순간 끝나는 게 아니라, 최악의 고통이 계속되게 하겠다는 겁니다. 또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고, 거기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43-44절입니다. “[4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닥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겠다는 뜻입니다. 용케 도망하는 사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함정에 빠지고, 거기서도 구사일생으로 기어나오면 다시 올무에 걸립니다. 그래서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철저하고 빈틈없이 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반드시 허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법을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어 놓아도 교묘하게 그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에는 예외자가 발생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에는 절대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중삼중의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훗날 있을 하나님의 심판도 이렇습니다. 호리도 남김없이 심판하십니다. 한 건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냐면, 모두가 심판 앞에서 유구무언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에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최후 심판과 같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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