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5w: 예레미야 강해 72(렘 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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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수요성경공부 http://thegreen.tistory.com
2011년 1월 5일 예레미야 강해 72
본문: 렘 45:1-5
[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그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2]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3]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4]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5]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의 본문은 특이합니다. 예레미야의 서기요 그의 오랜 친구였던 바룩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시간적으로는 44장보다 훨씬 전의 말씀입니다. 여호야김 왕 제4년이니까 BC 605년에 있었던 말씀입니다. 2절입니다.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45장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바룩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3절입니다.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누구보다 경건하고 신실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요 예레미야의 소중한 동역자이며 절친한 친구였던 바룩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집안 배경도 좋았습니다. 아버지도 동생도 고위관료였습니다. 그런 그의 신분이 그가 예레미야를 돕는 데도 유리했습니다. 그런 바룩도 하나님께 뭐라고 호소했다고 합니까?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누구보다 행복하고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 같은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 나름대로 고통과 슬픔과 탄식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위가 높고, 자식이 다 잘 되고, 이 세상에서 마음에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남이 모르는 고민과 아픔이 더 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태연한 척 할 뿐이지 마음에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바룩의 이런 호소에 대해 하나님은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히 소중한 깨우침입니다. 우선, 4절입니다.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세상만사를 당신의 임의대로 주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도 하시고 고통과 아픔도 주시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세우고 허시는지, 언제 뿌리고 뽑으실 지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다만 세우면 세우는 대로, 뽑으면 뽑는 대로 긍정하고 복종하는 게 옳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불신앙에 빠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왜 세우는지, 왜 허무시는지를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아멘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낙심천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셔야 합니다. 요셉처럼 형들에게 이유 없이 배신을 당해도 거기에는 미처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겁니다. 노예로 팔려가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겁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판단에는 그게 다 필요하기에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잘 되는 꼴을 시샘해서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덕이 되기에 때로는 고통을 겪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정없이 뽑으실 때도, 세우실 때도 더욱 냉정하게 근신해서 자신을 살피며 사색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이게 현실적으로는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바룩 같은 하나님의 종도 막상 그에게 시련과 고통이 닥치자 ‘화로다’ 하며 요란을 떤 겁니다. 시험에 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레미야 45장 한 장을 특별히 할애하여 바룩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바룩에게 아픔과 슬픔을 겪게 하셨습니까? 왜 바룩으로 하여금 탄식하게 하셨습니까? 5절입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왜 너 자신의 이익과 행복과 명예와 지위와 출세를 위해 좇아다니느냐,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겁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뜻입니다.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는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날마다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을까에 노심초사하며 살면 육체에 재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겪는 고통, 슬픔, 아픔, 피곤, 탄식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다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느냐에서 옵니다. 하나님은 바룩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사는 한, 육체에 재난을 면치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5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강권으로 반드시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도 이게 정 믿어지지 않으면,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거두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안 믿어지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영광이 이보다 못했다고 합니다. 오늘 피었다가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이 보살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주옥같은 말씀이긴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새와 풀 한 포기를 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을까를 염려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다 먹이고 입히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우리의 필요를 노략물을 주듯 공급하신다는 겁니다. 새해에는 나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며 사십시다. 그래서 화보다는 복, 슬픔보다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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