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1w: 예레미야 강해 55(렘 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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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수요성경공부 http://thegreen.tistory.com
2010년 9월 1일 예레미야 강해 55
본문: 렘 33:1-9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아직 유대 말기입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그에게 임했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무엇입니까? 32장 6절 이하에 나옵니다. 사촌 하나멜의 밭을 사라는 것이 여호와의 첫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을 목전에 두고 유다의 패망을 코 앞에 두고도 절망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고 희망을 사라는 계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 시점으로 봐서는 밭이 필요 없었으나 비싼 값으로 밭을 샀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첫 번째 계시였습니다.
이제 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2절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여호와는 절대 주권자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은 범사(凡事), 만사(萬事)입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호와가 모든 일에 대한 절대 주권자 이십니다. 잠언 16장 3절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했고, 잠언 16장 9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내가 계획을 세울 수는 있습니다만, 그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뜻과 내 뜻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왜 여호와의 뜻이 중요합니까? 왜 부단히 여호와께 우리 일을 물어야 합니까? 여호와의 뜻대로 일을 행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일이 성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신중하게 생각하고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이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 대한 진정한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대한 참된 주인은 여호와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뜻에 합당해야만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철저히 자기 정욕대로만 사는 세상 사람들의 경우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그 일이 잘 될 수도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을 보면 세상 사람에 관한 한 하나님이 그들의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철저히 간섭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일을 추진하고 관철해 가야 합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의 목숨이 걸린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일을 앞에 놓고도 ‘나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것이 만사에 대한 절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사는 성도들의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옳습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날마다 실패요 아픔이며 고통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철저히 내 길을 막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나로 하여금 나의 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바로 여호와의 절대 주권을 무시하고 자기들 뜻대로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그들을 징계하고, 깨닫고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처절함을 당하게 합니다.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부르짖음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부르짖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묻는 부르짖음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든 그게 다 주님의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에 대한 주권자는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범사에 반드시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물을 때 의식이나 요식이나 형식적으로 물으면 안 되고 부르짖으며, 보다 진지하게 여쭈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하시겠다는 겁니다. 주님도 피땀을 흘리시며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부르짖으면 응답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노라 다짐하며 부르짖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면 응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기를 부르짖으면 응답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도 내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들어주십니다. 3절 하반절을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합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것까지 깨닫고 이루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자가 부지런히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 거기에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약속하신대로 크고 비밀한 일까지 나타납니다. 자기 고집, 자기 욕구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며 살겠다는 자녀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3절의 은밀한 일은 개역성경에서는 비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일을 가리킵니다. 열심히 주께 부르짖으시며 부단히 하나님의 뜻을 물으십시오. 매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십시오. 그래서 큰 일, 비밀한 일까지도 다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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