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0w:예레미야 강해 23(렘 9:12-26)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9년 12월 30일 예레미야 강해 23
본문: 렘 9:12-26
[12]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 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16]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 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18]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19] 이는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거처를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20]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 [21]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22] 너는 이같이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 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버려져 거두지 못한 곡식단 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지난 주에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비애,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연민을 살펴보았습니다. 내 눈이 눈물의 근원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다의 우상숭배와 총체적인 거짓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서 왔다는 것도 지적했습니다. 9장 6절 하반절입니다.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 백성이 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3절 하반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영적 간음에 빠지며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 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에서 온 죄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제대로 깨달았던들 그런 죄악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9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일들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일들이란 유다의 우상숭배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레미야 너는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네 백성에 대한 연민을 거두라는 겁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공부했던 중요한 것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자연에게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회복되면 자연도 회복되고, 인간이 타락하면 자연도 훼손됩니다. 산들도 광야도 다 황폐하게 되고 심지어 공중의 새와 짐승들도 다 사라진다고 합니다(10). 왜 이렇게 된다고 했습니까? 사람과 자연의 운명이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자연을 맡긴 이후 그때부터 자연과 사람이 맞물려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복 받으면 자연도 복 받고, 사람이 타락하면 자연도 황폐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그 회복을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치 않고 바알을 숭배하는 영적 간음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하시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그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3-14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어떻게 진행되며,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그 상황을 수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징계는 이런 수순을 밟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15). 쑥을 먹이십니다. 쑥은 지독하게 씁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고 그 마음의 완악함을 좇으면 하나님이 쑥을 먹이시고, 그 다음에 쓴 물을 마시게 합니다. 쑥은 입에만 씁니다. 그런데 이 쓴 잔은 복통이 일어납니다. 독을 마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속앓이를 하게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그 가락대로 살면, 처음에는 입에 쓴 쑥을 먹이시다가, 그 다음에는 독배를 마시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여러 낯선 땅으로 가게 하시고 결국 지리멸렬하게 하십니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남으면 칼을 보내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수순입니다. 처음에는 쑥을 먹이고, 다음에는 쓴 잔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낯선 땅으로 흩으시고, 그래도 살아남으면 칼을 보내십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이런 수순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방도로 이런 징계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17-18절입니다.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 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18]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 장례문화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곡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곡하면 다 따라 웁니다. 그런 사람이 직업적으로 있었는데 그 사람을 불러서 통회하라는 겁니다. 성경은 빨리 곡하라고 합니다. 필사적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회개하라는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한 시라도 빨리 회개하라는 겁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 심판에 직면했다면, 어떤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회개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20절입니다.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 어른들만 울지말고, 자녀들과 이웃까지도 다 자복하고 회개하라는 겁니다. 온 마을이 다 곡하는 부녀를 따라 울게 하라는 겁니다. 온 가정과 교회가 다 통회하라는 겁니다. 가장 한 사람으로 안 됩니다. 곡하는 부녀를 따라 자녀들도 다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는 다 회개해도 가족들 회개하게 할 생각은 안 합니다. 이것도 함정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망이 우리의 자녀들까지도 멸절시킨다고 합니다.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21).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하고 싶으십니까?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과시하고 싶고, 용사는 자기의 용맹을 자랑하고 싶고, 부자는 자기의 부를, 미인은 자기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랑은 다 헛되다고 합니다.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공의를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랑거리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죄악을 징계하고 심판하시고, 또 어떻게 징계를 피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 이것을 자랑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백성들은 자기의 지혜, 부, 권력을 자랑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 하나님의 심판의 수순을 아는 것, 그 심판의 수순의 고리를 끊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이것을 몰랐고, 이게 그들의 불행이었습니다. 2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아무리 할례받은 족속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할례받지 못한 족속과 같습니다. 결국 할례 받은 족속이나 받지 않은 족속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았다면 이런 일이 있지 않았을 것인데, 육체적 할례만 있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은 할례 받지 못한 에돔이나 암몬 등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진정한 할례는 육체적 할례뿐만 아니라 마음의 할례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는 유다 백성처럼 무지할 수 없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