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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w: 예레미야 강해 22(렘 8:18-9:11)

2009년 12월 23일 예레미야 강해 22
본문: 렘 8:18-9:11

[8: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2]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를 곳을 얻는다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5]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지치거늘 [6] 네가 사는 곳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8]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9] 내가 이 일들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라 [11] 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뇌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입니다. 22절의 길르앗은 교회를 뜻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유다가 교회로는 안 가고 이방신전으로만 갑니다. 예레미야는 내 백성을 위해 주야로 운다고 합니다. 당시 유다의 죄와 허물은 영적 간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의 치명적인 죄는 거짓이었습니다. 8장 10절도 보면,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와 제자상이 모두 거짓으로 백성을 호도한 겁니다. 9장에서는 이점을 성토하고 있습니다. 9장 2절 이하입니다. “[2]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를 곳을 얻는다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5]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지치거늘.” 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9장 4절에서는 이웃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주님도 제자를 세상으로 내보시면서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이런 현실적인 당부를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입으로 평화를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해를 꾸민다는 겁니다. 이것은 준엄하고 극명한 현실입니다. 오죽하면 혀를 죽이는 화살이라고 했겠습니까.

당시 유다 백성이 우상에 빠지고 악한 혀를 놀려 총체적인 거짓에 빠진 이유가 나옵니다. 이게 어디서 왔습니까? 3절, 6절을 보니, ‘여호와 알기를 싫어함’에서부터입니다. 여호와 알기를 싫어한 데서부터 온 죄악입니다. 물론 그들은 누구보다 여호와를 잘 안다고 했습니다만, 정작 하나님은 그들은 나를 모르고, 나를 알기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은 제사보다 나를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살면 거짓을 행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그런 유다를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유다 백성이 공의의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던들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9장 10절입니다. “[10]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라 [11] 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인간뿐 아니라 자연환경도 초토화됩니다. 예레미야는 사람뿐 아니라 산과 광야, 목장을 위해 웁니다. 완전히 황폐화된 겁니다. 신구약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은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도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건강하게 보존되려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합니다. 12절 상반절입니다.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연동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 모든 자연을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인간과 자연은 항상 같이 갑니다. 자연은 인간의 바로미터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망가져있는지는 지금의 자연환경을 보면 됩니다. 인간은 가공할 자연재앙으로 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끝난 덴마크 코펜하겐의 환경회의에서 아무 합의점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손실을 입기 싫다는 겁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응징하시면서 반드시 자연도 함께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정말 자연보호를 하고 싶다면, 환경보호운동에 나서기 전에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거짓과 우상숭배를 한 죄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유다 백성의 패망을 보면서 울었는데 이제는 망해버린 자연을 보면서 예레미야가 슬피 웁니다. 오늘 본문에서 들어야 할 메시지를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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