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1216w: 예레미야 강해 21(렘 8:13-17)

2009년 12월 16일 예레미야 강해 21
본문: 렘 8:13-17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14]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니라 [15]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16]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켰도다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지난주에는 바벨론이 침공해서 유다 지도자의 뼈를 다 꺼내서 그 지도자들이 섬기던 우상들에게 벌여 놓는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할 만큼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의 거짓된 붓이 백성으로 하여금 타락하게 했고, 선지자와 제사장이 평강하다며 거짓으로 백성을 오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철저히 응징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심판 전에 땅에 임할 징조, 곧 예고편을 말씀합니다. 주님도 직접 종말 예고도 하셨습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전조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준 은혜를 회수한다고 하십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이게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의 전조입니다. 포도와 무화과는 유대인들에게 과일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것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좋던 수확이 끊겼다는 것은 이게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심판 전에 징조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잘 되던 장사, 사업이 안 될 때 여러 계시적인 의미가 있겠으나 한 번쯤 진지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돌이키고 회개하면 심판을 면합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단계까지 가면 심령이 강퍅해지고 굳어질 대로 굳어져 회개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을 봐도 하나님이 전조를 주셔도 더 마음이 강퍅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인간적인 방법을 부리면서 오기를 부리는 겁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게 바로 심판을 앞둔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입니다. 14절입니다.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니라.” 자기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이 징계를 주시고 있음을 다 알면서도 회개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맞서려고 합니다. 견고한 성읍은 예루살렘 성입니다. 거기로 모이자는 겁니다. 이것은 6장 1절 이하를 정면으로 비웃는 겁니다. 거기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도피하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부터 망하니까 피하라고 했는데, 거꾸로 예루살렘으로 모이자는 겁니다. 결국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죽자는 결정을 내립니다. ‘에잇 까짓 것 죽자’는 겁니다. 이것은 반항입니다. 대책 없는 반발은 말세적 증상입니다. 하나님이 죽이겠다는데 죽자는 것은 말세적 징조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런 현상이 만연할 것이라는 겁니다. 무모한 오기, 대책 없는 배짱을 부리는 겁니다. 어떻게든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신앙적인 살 길을 모색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피하라고 했는데 거기 모여 죽자는 것은 안 됩니다.

세 번째로 기도응답이 사라지는 겁니다. 15절입니다.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평강은 우리의 기도제목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 대신에 놀라움뿐이라는 겁니다. 경악만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날마다 가슴 철렁하는 일만 생깁니다. 치유가 아니라 병이 악화됩니다. 목회자의 기도는 결국 성도들의 평강과 치유입니다. 다행하게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이런 기도가 응답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세로 가면 갈수록 이런 기도에 응답이 없을 겁니다. 최후 심판의 징조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이 없다면 말세가 가까웠다고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기도 응답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을 떠받치는 기도 응답이 없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러한 전조 다음에 비로소 여호와의 심판이 임합니다. 먼저는 북쪽의 단으로부터 말들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16절입니다.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켰도다.” 바벨론 군대가 준마를 이끌고 북쪽 땅부터 유다를 삼키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온 나라를 초토화 시킨다는 겁니다. 마지막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17). 바벨론의 상징이 뱀입니다. 뱀이 덮치는데 대책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향해 격노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충동적이거나 우발적이지 않습니다. 용의주도한 계획 하에 단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라도 회개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십니다. 심판의 전조를 보시면서 회개하십시다. 용서받습니다. 징조들은 우리에게 말미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느 단계에서라도 돌이키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연민입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심판을 실행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실행하시는 겁니다. 그런데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죽이겠다면 죽겠다’고 합니다. 자폭하자고 합니다. 이러니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심판의 징조까지 말씀하셨겠습니까? 어떻게든 위기의식을 갖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점진적인 심판의 배후에는 이런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아서 결국 망했습니다. 이 예언 그대로 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