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9w: 예레미야 강해 07 (렘 2: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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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9일 예레미야 강해 07
본문: 렘 2:26-37
[26] 도둑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 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들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27]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28]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29]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캄캄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26절 상반절을 보면 “도둑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 같이” 라고 합니다. 도둑은 남의 돈을 훔쳐 제 것처럼 흥청망청 쓰고 다닙니다. 그러나 붙잡히면 망신을 당하고, 감옥에 갑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율법의 굴레를 벗어나 제 멋대로 살 때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도둑을 잡듯 이스라엘을 잡아 수치를 당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유다의 구체적인 죄악은 무엇입니까? 이미 지난 시간에도 지적했습니다만, 오늘 본문도 그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처벌을 당하는 대상이 나옵니다. 26절 하반절입니다. “이스라엘 집 곧 그들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당시 유다는 총체적으로 타락한 겁니다. 그들은 어떤 죄를 범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등을 돌리고, 나무를 향해 내 아버지라 하고 돌을 향해 내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28절 하반절을 보면,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고 합니다. 한 두 신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바알과 아세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는데, 다른 재래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상신도 섬기고, 천지신명도 섬깁니다. 천지신명은 천지의 모든 신이란 뜻입니다. 천지의 모든 신에게 비는 겁니다. 기왕이면 그렇게 빌면 더 많은 복을 받는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재래 종교는 다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도 예수 신을 섬깁니다. 다만 유일신으로 섬기지는 않습니다. 다신론이고 범신론입니다. 역대 왕들이 다 신이고, 영웅이나 전사자들이 다 신입니다. 신사에 그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당시 유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렸다고 하지만, 위급할 때는 하나님도 찾았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하나님도 섬긴 겁니다. 그래서 유다의 성읍보다 더 많은 신을 섬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둑이 붙잡혀 수치를 당하듯이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도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절에 가면 부처에게 합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유다가 많은 신을 섬겼지만 어떤 신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28)고 합니다. 그럼에도 어리석게도 우상에게 그렇게 미련을 가졌느냐는 겁니다.
유다가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으로 도둑처럼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9절 이하입니다. “[29]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이것은 유다가 하나님께 반항한 겁니다. 분명 잘못해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하여금 체벌한 것인데, 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한 겁니다. 오히려 선지자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징계를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바벨론에 투항하고 가서 죗값을 치르고 오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징계한다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고 우리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성서적으로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했습니다(히 12:8). 남의 자식인데 왜 내가 매를 들겠습니까. 요한계시록 3장 19절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나님이 징계를 하실 때는 자기성찰을 해야 하는데, 내 잘못이 뭐냐며 하나님께 대드는 것은 패륜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다로서는 도저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백성에게 호소한 것이 바벨론에 투항하고 노예 살이 하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예레미야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또한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35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유다는 계속해서 잘못한 것 없다고 합니다.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도 나는 무죄하다고 하니 이게 가당한 일입니까. 유다의 성읍 수보다 더 많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칼로 죽였으면서도 죄지은 게 없다는 겁니다. 이것뿐만 아닙니다. 34절입니다.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율법에 보면 남의 담 구멍을 뚫을 때 죽이면 정당방위입니다. 그런데 그런 정당방위가 아니라 오묘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가산을 취했습니다. 무고하게 사람을 해치고 치부한 겁니다. 36절을 보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지금 유다가 바벨론의 위협 때문에 앗수르와 애굽을 찾아가 비굴한 외교를 한 겁니다. 유다가 이 나라 저 나라에 구걸하고 다닌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찾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치 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도 지은 죄가 없다고 합니다. 37절입니다.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아무리 앗수르와 애굽을 찾아가도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기에 그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죄악 때문에 당시 유다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투항하라고 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형기(刑期)를 채우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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