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6w: 히브리서 강해 13(히 7: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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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6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3
본문: 히 7:16-28
[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오늘 본문에도 멜기세덱이 나옵니다만 지난주에도 우리는 멜기세덱을 다루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그가 나와서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자신의 전리품 중에서 1/10을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기원입니다. 이 멜기세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예표라고 합니다. 왜냐면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면서 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6장과 마찬가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나옵니다.
멜기세덱의 반열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장과 대비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왕이 아니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유사 이래 멜기세덱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멜기세덱과 같은 왕이요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다는 겁니다. 히브리서가 멜기세덱을 얘기하며 주님의 대제사장 되심을 말씀할 때 구약의 레위족속의 많은 제사장과 대비하여 쓰고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은 왕 같은 제사장이셨습니다. 천상천하에 모든 권세를 손에 쥐신 왕이시면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보자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대제사장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율법에 의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시고 유일한 왕 같은 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7장 말씀은 율법에 의해 세움을 받은 제사장 레위 족속들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주님의 우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16절입니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은 계명의 법을 좇은 것이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입니다.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은 이전의 계약에 따라 된 것이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은 더 좋은 언약인 복음의 보증으로 된 제사장입니다.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은 수효가 많았습니다. 제사장들도 사람이기에 수명을 다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대를 이어야 하기에 제사장의 수효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3절입니다: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시기에 한 분 만으로 족합니다. 또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은 날마다 때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를 테면 그들이 드린 제사는 양 한 마리로 백성 한 사람의 죄만 대속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수많은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레위 족속 제사장들의 한계와 양과 염소와 같은 제물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릅니다. 28절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율법은 약점과 한계를 가진 레위 족속이라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지만, 복음은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드린 제사는 완전하고 완벽한 제사였습니다. 26절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2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주님은 완전하시고 하늘보다 높으시고 귀하신 분이시기에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처럼 백성의 죄를 위해 날마다 때마다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단 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속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주님 자신이 완전하신 분이셨고, 또 제물로 바친 것이 완전한 당신의 보혈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은 그들이 인간이라는 한계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또 그들이 바친 피는 짐승의 피 아니면 고기였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어지는 9장 13-14절입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이 염소와 황소와 암 송아지의 피로 대속했다면, 하물며 흠 없고 티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너희를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없겠느냐는 겁니다.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개종한 히브리인들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을 가져와 대속을 했는데, 어떻게 한 번에 죄를 다 속할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짐승의 피와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는 얼마든지 돈을 주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은 안 됩니다. 아무리 우리의 죄가 중하다고 해도 주님의 보혈의 값으로 대속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을 드리고 염소를 드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딱 한 번으로도 족합니다. 그만큼 주님의 피값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거의 죄, 지금의 죄, 앞으로 지을 죄까지 다 대속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주님의 피값이 크지 않다면, 우리는 최소한 1년에 한 번 씩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은 주님의 보혈은 우리의 그 많은 죄를 대속하고도 남을만큼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7절입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이 사실을 깨닫고 감격 속에 살라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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