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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w: 히브리서 강해 12(히 6:19-7:3)

2008년 11월 19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2
본문: 히 6:19-7:3

[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7장의 주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반차’는 반열, 배열, 계보란 뜻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열에 서신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란 말입니다. 멜기세덱은 누구입니까? 구약 창세기 14장에 나옵니다. 14장 17-20절입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입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제사장이면서 살렘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브라함과 인연을 맺은 게,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의 동맹군을 격파하고 그들에게 잡혀간 조카 롯을 구출해서 돌아오니,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승리를 기뻐하며 아브라함에게 포도주와 떡을 주면서 복을 빌었다는 겁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자기가 노획한 전리품에서 1/10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레위기와 민수기 즉 모세 시대에 나오는데, 율법 이전에 이미 십일조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원조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교회의 유수한 전통입니다. 십일조는 내 소득, 소출의 10/10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1/10을 바침으로써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형식화하고 제도화한 것이 지금 우리의 십일조입니다.

그러면 십일조는 어떻게 집행해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은 십일조가 원래 제사장의 생활비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십일조든 그 이후 율법이 규정한 십일조의 용도는 같습니다. 제사장들의 양식은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입니다. 성미도 십일조 개념입니다. 우리 가족의 양식에서 1/10을 떼어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하는데,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에게는 땅을 주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경작지가 없고 백성들의 십일조로 생활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자기 노획물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십일조의 용도가 제사장의 생활비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가 제사장들의 몫이기에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제사장들에겐 땅을 분배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세속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매진했습니다. 요즘 교회에 바치는 십일조는 경상비로 많이 쓰입니다. 사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십일조를 경상비로 쓰고, 목회자의 생활비를 별도로 책정하는 것은 그리 성서적이지 못 합니다. 십일조가 많든 적든 십일조는 제사장의 몫입니다.

히브리서는 왜 멜기세덱을 이토록 강조하는지 짚어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기 때문은 아닙니다. 십일조의 기원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히브리서가 멜기세덱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함께 본 7장 1절에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창세기 14장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왕이요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았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왕이시고 영원한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멜기세덱이야말로 주님의 정체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요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마치 주님이 멜기세덱과 같은 분인데, 하늘과 땅의 권세를 잡은 분이면서 동시에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의 죄를 대속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열에 서신 분이라는 겁니다. 이 점에서 구약의 멜기세덱이야말로 이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겁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려고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을 언급합니다. 주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왕 같은 대제사장입니다. 구약에서는 멜기세덱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왕이면서 대제사장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하신 우리의 구원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이것이 무엇과 같습니까? 6장 19절을 보면 ‘영혼의 닻’ 같다고 합니다. 주님이 이루신 구원,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이라는 겁니다.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우리 영혼의 닻입니다. 우리 구원은 절대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은 짐짓죄 때문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우리 구원이 해소되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 사실에 대한 확신이 우리의 소망인데, 이게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게 우리를 지킨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이룩한 것이라면 몰라도 멜기세덱의 반열에 서신 주님이 이루신 구원에는 절대 실패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이요, 우리 영혼의 닻입니다. 이것을 말씀하기 위해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을 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오늘 7장의 메시지가 여러분의 든든한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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