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3w: 히브리서 강해 14(히 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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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4
본문: 히 9:1-22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오늘 본문은 율법에 관한 말씀인데, 요지는 옛날 율법은 그 자체로 자기 충족적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자체로 완전하거나 종결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전초, 복음으로 가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을 보면, ‘율법은 몽학선생이고, 우리를 복음에로 인도하는 가정교사, 개인교사’라고 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9장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율법이 말씀하는 예법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합니까? 그럼에도 그 율법이 말씀하는 예법이나 제사법들은 궁극적으로 복음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제사장들은 결국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하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존재들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히브리서 8장 5절입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숱한 제사장, 그들이 집행했던 제사는 모두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통해 복음을 만나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통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개인교사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지 않고, 다만 우리가 복음에로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통해 복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대속의 사역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구약시대의 성전을 말합니다. 성소, 지성소, 거기에 배치된 여러 가지 금향로, 진설병, 등대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복음을 상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대속의 사역을 지시하는 것이기에 이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구약의 제사들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런데 유대교 전통에 익숙했던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단 한 번 제사로 주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있느냐고 시비를 걸고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황소와 암 송아지는 다 짐승인데도 그런 미물의 피로 부정한 자를 정결케 했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죽은 양심에서 살아나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속죄의 제사가 아니라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속하신 것에 대해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짐승의 피로도 사람의 죄를 대속했다면, 흠 없고 티 없는 하나님 독생자의 보혈이 너희를 어떻게 깨끗케 할 수 없겠느냐고 합니다. 주님의 피는 값지기에 한 번 바침으로써 전 인류를 영원히 복되게 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양심을 깨끗케 해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는 짐승의 피와 비교할 수 없는 보혈입니다. 주님의 피는 전 인류와 전 우주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 한 분의 보혈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값을 영원히 다 치루고 남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우리는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 때는 값싼 짐승의 피를 드려야 했기에 매번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속죄의 제사는 필요 없고, 감사의 제사만 드리면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어떤 제사를 드리든 그것은 다 성격상 감사의 제사입니다. 속죄의 제사가 아닙니다. 구약 시대 때는 모든 제사가 속죄의 제사였으나 지금은 모든 제사가 다 감사의 제사입니다. 2000년 전에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피를 바쳐 이루신 구속에 대한 감사의 제사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보혈로 우리를 대속해 주셨다는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부활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행위가 우리의 죄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주님의 피값이 우리의 죄값보다 더 비싸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주님의 피값이 우리의 죄값보다 적거나 같았다면 주님은 부활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주님은 사흘 동안 무덤 속에 계심으로써 우리의 죄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보혈이 얼마나 값진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무엇으로 당신의 독생자와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런 독생자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가지 더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구약의 제사장들은 속죄의 제사를 바치면서 짐승의 피를 드렸을까요? 이점을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하나님이 피에 굶주린 신입니까? 하나님은 속죄 제사 때마다 피를 요구하셨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죄는 너무도 고약한 것이어서 반드시 죽음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죄에 대한 처방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죄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겁니다. 죄 때문에 저주와 죽음이 왔습니다. 죄를 짓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과일 하나 따먹은 죄나, 살인한 죄나 어쨌든 죄는 무섭습니다. 피는 생명을 가리킵니다. 생명을 바쳐야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짐승의 피, 곧 생명을 바친 겁니다. ‘내 죄 때문에 짐승이 희생당했으나 이제 내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 바로 구약의 속죄 제사입니다. 죄는 이토록 무섭습니다. 생명을 바쳐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당신의 보혈,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고 우리를 대속해 주시고, 우리의 죄 문제를 일거에 영원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영원히 대속하시기 위해 당신의 보혈을 바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다. 이토록 죄는 무서운 실체입니다. 만일 주님이 당신의 보혈을 십자가에서 바치지 않으셨다면, 아직도 우리는 짐승을 잡고 있을 겁니다. 다른 처방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단 한 번 사흘 간 죽으심으로써 그 피의 엄청난 댓가로 인해 우리는 단숨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속의 제사가 아니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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