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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5w: 히브리서 강해 7(히 3:7-19)

2008년 10월 15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7
본문: 히 3:7-19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지난 주에는 3장 1절 이하를 상고했습니다. 그 주제는 모세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의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꼽는 모세와 그리스도를 대비시키면서 그리스도가 더 크고 위대하다고 그리스도의 우위를 변증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모세보다 더 크냐면,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보내심을 받은 원초의 사도라고 했습니다. 왜 제자들을 사도라고 하냐면, 예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원초의 사도라는 겁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히 3:1).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대제사장이 많습니다. 그 대제사장은 소임이 중보자입니다. 하나님을 대표하고, 백성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대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완전한 중보자시라는 겁니다. 왜냐면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vere Deus vere Homo)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 자체로 신비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는 분석이나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사람이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완전한 중보자의 소임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무후무한 대제사장이라는 겁니다.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은 완전하지 못했고, 그래서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합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 집의 사환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과 아들이 비교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7절 이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나님을 시험하지도 말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말라는 겁니다. 과거 선조들의 역사를 교훈삼아 오늘날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8절 말씀이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본문은 출애굽기 17장 1절 이하에 나오는 므리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20장에도 나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각한 사건입니다. 한 번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백성들도 징계를 받았지만 모세도 벌을 받았습니다. 왜 히브리서가 이 본문을 지적하냐면 모세도 벌을 받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출애굽기보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적어 놓고 있는 민수기 20장 2-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 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여호와와 다투고 싸웠다고 합니다. 모세를 비난하고 아론을 욕합니다. 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도 극도로 성질이 난 겁니다. 하나님이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 모세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분을 터트리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쳤습니다. 여기서 쳤다는 말은 살해하다는 뜻입니다. 굉장히 강한 말입니다. 하나님 면전에서 성질을 부린 겁니다. 그러니까 12절에서 당장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히브리서는 이런 범뵈를 저지르지 말라고 합니다. 출애굽 1세대는 다 광야에서 죽습니다. 그 원인을 성경은 불순종으로 봅니다.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과 다투었기 때문에 다 광야에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과거의 불행을 되짚어서 다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말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과 18절입니다: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우리가 이스라엘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의문이 생기는 것은 ‘그렇다면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과 모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갔으니까 천국에도 못 들어갔는가?’라는 겁니다. 왜냐면 요단강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세는 당연히 천국을 갔다고 믿습니다. 주님이 변화산에서 구약의 두 인물을 만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고, 모세는 율법을 대표합니다. 만일 모세가 광야에 죽어 천국에 못 갔다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모세와 회담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모세가 죽은 사건은 보다 깊은 신학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기에 율법으로는 천국갈 사람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율법 곧 행위로는 못가고,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복음으로만 천국에 감을 모세가 광야에서 죽는 것으로써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죽었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이 땅에 계속 두시는 이유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성화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구원은 은혜이지만, 성화는 자기 의지로 노력해야 합니다. 성화에 상당하는 상급을 천국에서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세상에 남겨 두어도 덕이 안 되기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신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객사시킨 것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오히려 빨리 데려가시는 것이 더욱 좋은 겁니다. 더 두어보았자 죄만 더 짓기 때문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욕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때로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빨리 데려가시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다투지 말고 순종하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으로서 개종한 히브리인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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