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선언(욥 13: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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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
욥의 선언
욥 13:14-19
욥은 이제 하나님께 자신을 변호하고 싶어하며(3절), 그 천상의 법정에 출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이제 자신이 말할 수 있도록 잠잠해 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자기 변호의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13절).
<내 살을 내 이로 문다>(14절)는 표현은 내가 스스로 자해하며 위기를 자초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희망이 없노라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15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 드시면 나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뜻일 뿐 실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욥도 <내가 그의 앞에 내 행위를 아뢰리라>고 합니다.
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설 소망을 발견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욥은 지금 절망의 와중에도 한 가닥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겠다는 것도 곧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전제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의 결백을 시인하시고 죽이시려던 뜻을 전격 철회 하실거란 겁니다.
따라서 욥이 여기서 희망이 없다고 선언한 것은 역설입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불행하고, 죽음 같은 절망이 닥쳐온다 해도 우리의 행위와 결백을 호소하고 탄원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결코 현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구원이 되리라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리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16절).
대단히 중요한 선언입니다.
맞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법정에 나갈 수 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절대적으로 경건한 분이시므로 경건하지 않고서는 감히 누구도 그 분의 면전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화>가 필수적인 이유도 천국은 거룩한 나라요, 성부, 성자, 성령이 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먼저간 성도들이 다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이미 완성된 것이라기보다 아직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훗날 더욱 성화된 모습으로 천국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 설 때 비로소 그 구원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한 욥의 선언은 옳았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으리라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18절).
구약시대, 율법시대 때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자신의 사정과 행위를 진술하여 옳다하심을 받아야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물론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의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
따라서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던 욥에 비하면 오늘 우리들은 훨씬 더 복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행위나 율법으로서는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칭의를 얻게 된 것입니다.
부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하십시오.
평생을 두고 이를 감사하며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