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1w: 히브리서 강해 5(히 2:11-18)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8년 10월 1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5
본문: 히 2:11-18
[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지난주 우리는 과거 유대인들의 세 가지 죄악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유대인들은 천사로 하신 말씀 즉, 율법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큰 구원을 등한시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성령께서 당신의 뜻대로 나누어 주신 은사를 그들은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고 지냈습니다.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악한 게으른 종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변된 보응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당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AD 70년에 예루살렘이 초토화 되었습니다. 좀 더 비약적인 해석을 하자면, 그로부터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헤맸고, 2차대전 때 그들은 히틀러에게 600만이나 살해를 당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구속을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못났지만 그래도 주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습니다. 따라서 너희는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당부가 바로 히브리서의 내용 입니다. 히브리서는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과거 유대인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공변된 보응을 거울삼아 너희는 그런 죄악에 빠지지 말라는 겁니다.
오늘의 본문엔 보다 구체적인 권면이 나옵니다. 천사보다 위대하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를 의지하라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앞에서 주의 성호를 찬양하라고 합니다. 12-13절입니다: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첫째, 주님만이 마귀를 없이 하시고 죽음에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여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14-15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주님만이 마귀를 없이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사망에 종노릇하던 자들을 놓여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천적은 마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가 자기들의 상전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를 실족케 하는 것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 이 마귀의 힘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마귀는 우리보다 단수가 높습니다.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상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마귀는 꼼짝 못 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천하의 마귀도 주님 앞에서 꼼짝 못했습니다. 마귀가 주님께 대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해야 우리가 마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할 때 마귀가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시는 주님이 무서워서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죽음에 종노릇하던 이들을 놓여나게 하신다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죽음의 위협 때문에 때로는 비겁하게도, 때론 구차하게, 때론 내가 살겠다고 남을 해치기도 합니다. 다 죽음에 코가 꿰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세력을 마귀가 잡고 있습니다. 죽음의 배후 세력은 마귀입니다. 14절을 다시 봅니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마귀는 사망으로 항상 우리를 위협합니다. 사망으로 우리를 위협하며 마귀는 우리를 부리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주님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도 주님처럼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더 이상 죽음의 위협 앞에서 비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주님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 종노릇하던 모든 자들을 놓여나게 하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수십 수백만이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감사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왜냐면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께 영원한 운명을 맡기고, 감사하며 죽음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마귀의 세력을 이기셨기에 주님을 의지하고 형제들에게 주님을 증거하고 교회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라는 겁니다.
둘째, 주님은 천사들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들어 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을 의지하라고 합니다. 16절입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주님이 사랑하는 대상은 천사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상으로는 유대인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하고, 모슬렘은 자기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삭이냐, 아브라함-이스마엘이냐만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둔 모든 이들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생물학적인 조상이 아니라 영적 조상입니다. 주님의 관심 대상이 바로 그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사랑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만 의지하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자신이 시험을 받아 친히 고난을 겪으신 분이시기에 따라서 시험받은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잘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주님을 의지하라는 겁니다. 18절입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주님이 우리의 진정한 선구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그냥 하늘에만 계신 분이 아니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세상살이를 하신 분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인생사 고난을 친히 겪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잘 이해하십니다. 우리의 아픔, 고난, 눈물, 슬픔을 주님은 너무너무 잘 아십니다. 왜냐면 주님이 우리의 선구자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처럼 처절하게 인간의 고통과 고난을 겪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배신을 당한들 주님만 했겠으며, 고난을 당한들 주님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우리더러 주님을 의지하고, 선포하고, 찬송하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유대인처럼 불순종해서 징계를 받지 않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