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3w: 고린도후서 강해 20(고후 1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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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3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20
본문: 고후 11:16-33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번 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것을 바울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단들입니다. 그들은 분열을 일삼았습니다.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했습니다. 늘 수세에 몰리다가 바울이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자기가 사도됨을 자랑할지라도 용납해 달라는 겁니다. 17절에서도 마찬가지로 기탄없이 자기 자랑하는 것을 좀 범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야 공평하다는 겁니다. 19절 이하입니다: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선동하는 이단들을 잘도 용납하고 있다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이단을 용납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나의 어리석음도 좀 받아달라고 합니다. 심지어 이단들이 너희를 사로잡고, 뺨을 칠지라도 용납하는데 나도 내 자랑 좀 하자는 겁니다. 이단에 속아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저러고 살까 싶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너무도 한심합니다. 19-20절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지혜로운 척 살면서 어리석은 사람에게 잘도 넘어가지 않느냐는 겁니다. 너희를 종으로 삼고 있는데 너희는 이단을 잘도 용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단 용납하듯 나도 좀 용납해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자랑합니다. 22-23절 상반절입니다: “[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이단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라고? 정신없는 말이라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잠입해서 바울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외모가 좋지 않다고 하고, 무자격자이기에 교회에서 사례도 받지 못한다고 하고, 예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면서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신실한 사도인지를 자신이 고생한 경력을 드러내면서 주장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번 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3절 하반절에 나오는 ‘여러 번 죽을 뻔한 일은’ 매를 맞은 것을 가리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으면 5번 죽을 뻔했던 겁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매인 40에 하나 감한 매는 40대 맞으면 죽기도 하기 때문에 39번을 때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매를 맞으면 사람이 죽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태장은 로마의 형벌입니다. 채찍 끝에 납이나 뼈조각을 달아서 치는 매입니다. 혹독한 매입니다. 이것을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그리도 바울은 돌에 한 번 맞았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바울이 죽었다고 내다 버렸습니다. 그 정도로 돌팔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전도 여행 중에 여러 번 파선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전도여행을 했기에 바울은 온갖 고난과 수고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28절입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개인적인 고난과 수모보다 더한 고통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개척해서 세운 교회들에 대한 염려가 더 컸다는 겁니다. 바울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이 바로 교회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29절입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누가 실족하면 그게 더 애타고 아프다는 겁니다. 하여간 바울은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로 짓눌려 살았습니다. 31절 입니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 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이것이 바울의 진실입니다. 바울은 약한 것, 고생한 것, 마음으로 교회를 염려하는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자기가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을 아신다고 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 모진 고난과 아픔을 다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12장에서 바울은 심지어 영적인 체험까지도 공개합니다: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이것이 자신의 사도권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바울이 판단한 듯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객관화하기 위해 제 3자의 경우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나 자신은 삼층천(낙원)에 가서 무언가를 체험했으나, 말과 글로 형언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난 14년 간 공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보기는 봤으나 표현이 안 되는 겁니다. 본래 천국이 그렇습니다. 보고 들어도 옮길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이미 14년 전에 낙원을 경험했으나 지금까지 말하지 못한 것이 이해 됩니다. 천국이 삼층으로 된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시의 지식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어쨌든 14년 전에 황홀한 신비의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왜 바울이 이 체험을 이야기 하냐면,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공격하는 이유는 바울의 몸에 있는 가시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런 깊은 신비체험을 했기에 하나님이 내 몸 안에 가시를 주셔서 바울을 자제시키고 계시다는 겁니다. 12장 7절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바울이 지닌 몸의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데 어떻게 너희는 그것을 빌미로 나를 공격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내 몸의 가시로 나의 사도됨을 공격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어떤 사도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고 있는 물증이 자신의 몸의 약한 부분 곧 가시라는 겁니다. 바울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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