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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w: 고린도후서 강해 21(고후 12:1-10)

2008년 7월 30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21
본문: 고후 12:1-10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이 작심을 하고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고린도 교회에 자기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도로서 당하는 고난을 얘기했습니다. 주리기도 하고, 목마르기도 하고, 강의 위협 등 갖은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다른 그의 서신과 사도행전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고난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가 평소에 생색을 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실은 이런 신변의 위험이나 육체적인 고생보다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11장 28-29절입니다: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28절 이전에는 사도행전이나 다른 서신에도 나오지 않는 육체적인 고난이 나오다가, 28절부터는 바울의 마음고생이 나옵니다. 여러 교회들을 생각하며 답답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사도로서 사명을 감당해 왔는데, 어떻게 너희가(고린도 교회) 이단들의 영향을 받아 나를 사도가 아니라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들이 대체 너희를 위해 무슨 고난을 받았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기의 마음고생뿐만 아니라 내친 김에 14년 전에 했던 신비한 경험을 소개합니다. 1절입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 후렴구처럼 계속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말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말로 옮길 수 없는 것을 보았기에 하나님만 아시지 자기는 뭐라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남의 몸의 가시를 빼줘도 시원찮을 사람이 자기 몸의 가시도 빼지 못하면서 사도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사도로서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에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나의 약점을 잘 알면서도 사도로서 인정해 주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바울의 약점이 바울이 사도가 아님을 증거하는 물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바울이 자기변호를 합니다. 바울은 자기 몸의 가시를 위해 세 번 주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응답하셨는데 9절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바울에게 베푼 은혜가 부족함이 없다는 겁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 크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것 좀 해결해 달라고 바울이 기도했는데, 뜻 밖에도 하나님은 내가 네게 베푼 은혜가 충분하다, 부족함이 없다, 온전하다고 응답한 것입니다. 바울 편에서는 아쉬운 은혜였는데, 하나님 편에서는 충분한 은혜, 완전한 은혜라고 하신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울이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응답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7절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9절의 주님의 음성을 바울은 7절처럼 해석하고 있습니다. 내 몸의 가시가 은혜로구나 한 것입니다. 12장 1절 이하에서 고백한 것처럼 바울은 낙원까지 갔다 온 사람입니다. 정말 남다른 은혜를 바울은 풍성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역시 사람이기에 바울이라고 교만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남다른 은혜를 받았기에 남달리 교만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전 차단장치로 하나님이 바울의 몸에 독한 가시를 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완벽한 은총입니까. 바울이 가시 뽑아 달라고 세 번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이때부터 더 이상 가시 뽑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주님의 은혜를 상실하지 않고 끝까지 누릴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자기 몸의 가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자신이 약할 때 강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의 가시를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응답이고 얼마나 대단한 해석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내 몸을 찌르는 가시를 위해 세 번 간절히 기도했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이 9절과 같이 응답하셨다면 바울처럼 7절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까요? 바울처럼 오히려 감사하고 자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또 하나님께 매달렸을 겁니다. 바울은 평소 영성이 투명하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정확히 깨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해석하지도 못하니까 적용도 못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서 배워야겠습니다. 지금은 아픈 것 같아도 결국은 다 하나님이 선으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모든 현실에 대해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신앙적이고 희망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바울에게 가시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니, 해석이 달리하니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약점을 보는 눈이 달라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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