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므깃도에서 (왕하 23:26-37)

므깃도에서
왕하 23:26-37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29절).
<애굽 왕 바로 느고>는 니느웨가 멸망한 후 3년째 되던 해인 B.C. 609년에 애굽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그는 당시 앗수르를 장악하고 있던 바벨론 왕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자 다시 유다 땅을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B.C. 605년경에 다시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을 공격했는데 이때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쟁에서 애굽을 격파했는데, 그것으로 애굽의 세력 확장은 중단되었습니다. 

느고는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를 이긴 후 직접 유다의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에 의해 세워진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인 엘리아김을 왕위에 세움으로써 유다를 애굽의 속국으로 만들려 한 것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입하여 그 곳을 점령하면 보통은 조공을 바치게 하는데, 바로 느고는  특이하게도 유다에 대해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아마도 요시야가 애굽과의 전투에서 죽은 후 유다 백성들이 애굽 동의 없이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애굽에 포로로 잡아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왕은 요시야의 바른 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구원을 얻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왕은 거의 20여 년 동안 선한 왕이었던 요시야 밑에서 유다가 그동안 어떻게 개혁되어 왔는지를 잘 지켜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도 부친의 그 선행을 좇아 행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 유다에 전혀 회개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우리 모두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외적인 개혁과 함께 가야하는 내적 변화입니다. 
또한 유다에 대한 멸망의 예언은 이미 히스기야 시대에 주어졌는데 여호아하스가 당한 포로 생활이 그 전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다 백성들 가운데서는 그 어떤 회개운동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들이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게 합니다.

<적용>
<엘리아김과 여호야김>(34절)이란 이름의 뜻은 같습니다. 무엇일까요?
요시야 왕의 순종과는 달리 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예레미야 2-13, 16-19장, 스바냐 1장 등에서 확인해봅시다.
요시야의 죽음에 관해 본문 30절과 역대하 35:20-24 말씀을 서로 비교해보십시오.

<기도>
주님, 요시야 왕이 애굽과 전쟁을 벌이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온 유다 사람들이 슬퍼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를 지었습니다. 
요시야가 왜 굳이 전쟁을 했고, 하나님은 왜 그처럼 선한 왕을 지켜주시지 않았는지 저희로서는 다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저희가 지금 저희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규정하고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사실은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옵니다. 
저희가 선하든 악하든 연약하든 강하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따라 저희를 이끌고 계심을 믿사오니 부디 매사에 더 큰 확신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