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잔치국수

푸른교회는 잔치국수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야탑에서는 상가 5층 공간의 절반이 교회고, 절반은 뜰이어서 매주 그 뜰에 나가 잔치국수로 교제했고, 지금의 이 지하는 주방 문이 주차장 쪽으로 개방돼 있어 그나마 큰 불편 없이 국수를 삶고 들통에 멸치육수를 끓여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27년 역사의 푸른교회표 잔치국수를 이제 더는 먹을 일이 없게 됐다는 사실이 아직 잘 실감나지 않습니다. 지난 2년은 코로나 때문에 강제로 쉰 것이라 방역조치만 풀리면 언제라도 다시 먹게 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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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한 그릇을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나면 왜 속도 마음도 평안해질까요?

잔치국수야말로 한국인들의 인생 국수여서 그렇습니다. 

잔치국수는 나눔이자 사랑이고 교제이자 연대며 그리움이자 추억입니다. 

서현에도 멸치 우린 육수에 말아내는 잔치국숫집이 있습니다. 저는 아주 가끔 그 집을 찾는데 어느 주일 오후 권 권사님을 모시고 갔더니 기껏 잘 드시고선 왈, <우리 교회 국수보다 못하네...> 하기야 저도 안양 새중앙교회 박 목사가 마니아 수준으로 즐기는 앙평의 <죽여주는 동치미 국수>보다 우리 교회 잔치국수가 더 좋습니다. 

성도들과 매주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 후루룩 후루룩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영혼까지도 따뜻해집니다. 요즘 같이 무더운 때도, 습한 장마철에도 특별한 고명 없이 그저 김 가루에 양념간장 한 술만 끼얹어도 잔치국수 한 그릇 비우고 나면 기분이 다 시원해지고 개운해집니다. 

<여름에는 역시 소면이지!> 이것은 일본 영화 <어느 가족>에 나오는 대사지만 잔치국수 만큼 한국적인 정서가 듬뿍 담긴 음식도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육수는 북어대가리에 건다시마, 굵은 멸치를 무, 대파, 양파와 함께 들통에 넣고 몇 시간 푹 고웁니다. 거기다 가끔은 청양고추를 몇 개 넣으시던데 그러면 국물이 좀 더 칼칼해지고 담백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국수도 언제나 한 그릇으로 끝난 적이 없지만 국물도 그릇 채 들고 마셔 늘 깨끗이 비웁니다. 

잘 익은 교회 김장 김치도 늘 잔치국수와 환상의 조합을 과시하는데, 그러나 고명은 별로입니다. 

계란지단과 김 가루 어쩌다 호박채 볶음이나 유부채가 오르기도 하지만 그건 가끔이고, 보통은 김 가루와 양념간장 한 술이 전부! 그럼에도 저는 그 소박함과 가난함이 좋고, 특히 설탕 대신 매실청을 듬뿍 넣어 새콤한 맛과 함께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양념간장이야 말로 푸른교회표 잔치국수의 화룡점정.

 

주일 새벽이면 소면을 삶고, 조촐한 식탁을 차리며 성도들을 기다리던 지난 27년의 세월, 이제 우리는 함께 잔치국수를 나누던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남기고 이 푸른 교회를 떠납니다.

 

날씨가 덥고 습하면 입맛까지 잃기 쉽습니다. 냉면도 좋고 시원한 콩국수도 제격이지만 따뜻한 잔치국수도 그만입니다.

오늘 점심이나 저녁은 남편들이 한 번 나서 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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