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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m] 왜 주님의 성탄을 기다려야 할까? (사 61:1-3)

20211128m
사 61:1-3
왜 주님의 성탄을 기다려야 할까?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며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이 벌써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늘 말씀드렸다시피 성탄절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첫 성탄을 회고하며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올해도 우리 가운데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또 한 번 새로운 감격으로 체험하는 절기입니다. 주님은 올해도 꼭 오십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불특정 다수에게 오시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기다리고 주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사모하며 준비하는 자에게만 오십니다. 그래서 성탄절 전 4주간의 준비 기간인 이 대강절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오늘이 바로 그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는 중세 때부터 이 대강절 첫 주일에는 언제나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린 이 이사야 61장 1절이하를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이사야 61장은 선지자 이사야가 주님의 성탄을 예언한 유명한 메시아 장인데, 특히 오늘 이 본문은 이사야 시대로부터 690년 후 실제 성탄하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실 몇 가지 중요한 사역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대강절 첫째 주일에는 늘 이 본문을 소개해왔습니다.

그러면 올해도 우리가 왜 반드시 주님의 성탄을 기다려야 하는지 올해도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베푸신 은혜가 어떤 것인지 한번 구체적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우선 뭐라고 하셨습니까? 1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그랬어요. 마음 상한 자를 고치시는 것이 주님이 이 땅에 성탄하셔서 행하실 첫 번째 미션이라고 합니다.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말씀 아닙니까. 2,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입니다. 그런데 그때도 이미 세상에는 마음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성탄하시면 제일 먼저 그 마음 상한 사람들부터 고쳐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 이사야 1장 6절 이하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 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매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사람들이 다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온갖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치료를 못 받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게 어찌 그 옛날 이사야 시대만이겠습니까? 그대로 오늘 우리들의 실상이고 적나라한 이 시대의 아픔 아닙니까? 이게 그대로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마음의 상처, 마음의 아픔 없으십니까? 남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멀쩡한 표정을 짓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눈물 흘리지 않고, 피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더구나 요즘은 이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 우울증에 빠져 극심한 마음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우울증 제1단계입니다. 불안하고 침울한 감정 때문에 그런 사람은 늘 두통이고 소화 불량과 무력증,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다음은 코로나 우을증 제2단계인 코로나 레드입니다. 그것은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이 분노로 폭발하면서 굉장히 파괴적인 정서를 드러내는데, 코로나 앵그리가 바로 그 코로나 레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코로나 블랙입니다. 코로나 블랙은 코로나 우울증 제3단계로 분노를 넘어 절망하는 자포자기하는 심리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정말 치명적인 단계인데 전문가들은 이미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 블랙에 빠졌다고 합니다. 올해도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그 치명적인 코로나 블랙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도 어루만지사 능히 치유해주십니다. 이게 바로 올해도 우리가 반드시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입니다. 

이 이사야서는 42장에서도 그가 오시면 메시아가 오시면 상한 갈 때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들불도 끄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갈대는 잡초고 그게 또 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쓸모가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이 그것마저도 결코 꺾지 않으시고 다시 싸매시며 고쳐주신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눈물 겨운 말씀입니까. 그 하찮은 잡초인 꺾인 갈대도 모질게 꺾어버리시지 않고 기어이 싸매서 고쳐주신다고 합니다. 

세상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약한 자, 상한 자는 절대 용납하지 않죠. 어떻게든 소외시키고 왕따시키고 배제하고 도태시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진정으로 여러분들의 그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고 싶으십니까? 올해도 주님이 오셔서 나를 어루만져주시고 싸매어주시면 아무리 깊은 마음에 상처나 아픔도 반드시 치유됩니다. 아무리 오래된 내 마음의 지병도 깨끗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금년 성탄절에는 모두가 꼭 주님을 뵙고, 무엇보다도 이 마음의 상처를 힐링하셔서 더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더 따뜻한 가슴으로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음은 본문 1절 하반절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주님이 오시면 포로된 자들,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합니다. 놓여남을 주신다고 합니다.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앗수르의 전쟁 포로로 잡혀가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로부터 690년이 지나 실제 주님이 이 땅에 성탄하셨을 때는 로마 식민지로 온갖 수탈과 억압을 다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메시아가 오시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신다는 이 메시지가, 이 말씀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됐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종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고 식민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내가 정말 자유인인가, 더 이상 그 어떤 것의 종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대답할 사람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정말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 한번 자문해보십시오. 우리 중 과연 몇이나 돈으로부터, 명예로부터, 권력으로부터, 탐욕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 중 과연 몇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온갖 걱정과 염려로부터, 악습으로부터, 옛 사람으로부터, 옛 습성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또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의 포로가 되어 고통 중에 계신 분들 있잖아요. 사실 이런 게 다 오늘 우리 믿는 자들의 현실적인 아픔이고, 분열이고 모순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신분은 분명 자유인인데 현실은 아니라는 것,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이게 또한 올해도 우리가 반드시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야 할 필연의 이유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를 진정으로 자유케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게 무엇이든 내 삶을 속박하는 악습이든 내 육신과 정신을 결박하는 병마든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자유하게 하시면 누구나 진정한 자유인이 됩니다. 부디 올해는 꼭 주님을 제대로 만납시다. 그래서 반드시 갇힌 자에게 놓임을 베푸사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게 하신다는 주님의 그 성탄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본문 2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2절 하반절 이하 3절 상반절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죄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슬픈 자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화관을 씌워주시고 또 슬픔 대신에 기쁨을 근심 대신에 찬송을” 주신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참 슬픈 존재입니다. 다들 기쁨 속에서, 보람 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 못합니다. 늘 눈물이고 한숨이죠. 정말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근심 없이, 슬픔 없이,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이제는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데가 없다는 거예요. 살아가며 때로 슬픈 일을 만나고 절망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위로받을 데가 있고 또 누군가가 내 곁에서 진심으로 나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견딜만하고 살만한데 갈수록 그게 더 어려워지고 아예 사라져가고 있다는 겁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그 마지막 순간 누군가가 곁에서 단 한마디라도 진정으로 위로해주고 그것을 이해해주면 극적으로 그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도 있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이제는 다 자기 혼자 삭혀야 합니다. 자기 혼자서 당해야 하고, 또 죽도록 모든 걸 자기 혼자서 지고 가야 하니 아무도 없습니다. 고독사라는 게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가 과연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과연 이 삭막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주님이 오시면 나의 그 모든 슬픔을 위로하시고 반전시키사 슬픔을 기쁨으로, 근심을 찬송으로 바꿔주신다고 합니다.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면 누구나 근심 대신 찬송을 하고, 슬픔 대신 기쁨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성탄에 은총을 베푸시면 우리도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고 또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고통하고 아파한 만큼 또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슬퍼한 만큼 반드시 성장하고 성숙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어느 해보다도 더 간절하고 더 절실한 심정으로 주님의 성탄을 고대하셔서 꼭 약속하신 이런 모든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듬뿍 누리시는 축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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