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n번 참가자들

어릴 적 우리는 동네 공터나 골목길에서 무수히 죽었습니다.

금을 밟아도 죽고, 피구를 하다 공에 맞아도 죽고, 고무줄놀이를 하다 발이 걸려도 죽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실격> 혹은 <퇴장>이라는 뜻으로 <아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걸 굳이 <죽었다>고 합니다. K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이 피 터지는 <데스 게임>이 된 것도 우리의 그런 죽는 놀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오징어 게임>이 출시 17일 만인 10월 4일 현재 넷플릭스 사상 최초로 1억1,100만 계정을 찍었다니 놀랍고 신기해 저도 지난 대체 공휴일 하루를 총 9부작 러닝 타임 8시간의 정주행에 모두 바쳤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달고나>, <줄다리기> 같은 꾀죄죄한 우리의 추억의 놀이들, 지난 세대야 날마다 하며 자랐지만 요즘 세대는 생소할뿐더러 10살만 넘어도 유치해서 절대 안 할 것 같은 놀이를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해 최후 승자가 456억원의 상금을 독식하는 <머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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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에 세계인들이 공감하며 몰입하는 이유는 뭘까요?

<오징어 게임>이야말로 인류가 지금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은유적으로 까발리며 우화의 형식을 빌어 연출한 상황극이기 때문입니다. 즉 돈 때문에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처절하고도 극단적인 설정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밑바닥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인생 실패자들이 어느 무인도에 마련된 거대한 게임장에 모여 1인당 1억원, 참가자 총 456명에 해당하는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생존 게임, 그런데 여느 서바이벌 게임처럼 격투기나 총칼을 쓰는 게 아니라 여기서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해온 여러 놀이를 통해 서로를 죽입니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만약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은 팍팍한 2021년 현재 지구촌의 모진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보다 현실이 더 처절한 무한 경쟁의 서바이벌 게임이고 더 치열한 약육강식의 정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도 찬반 격론 끝에 그 죽음의 게임을 중단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세상이 훨씬 더 <생지옥>이라며 제 발로 다시 그 <오징어 게임장>을 찾습니다. 

 

요즘은 기독교를 비웃고 조롱하는 반기독교적 정서가 대중문화 흥행의 필수 아이템입니다. <오징어 게임>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생뚱맞게 불쑥 불쑥 기독교 비하와 희화화가 튀어나오곤 합니다. 

극 초반 기훈(이정재 분)의 <나 예수 안 믿어요. 우리 집은 불교니 나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지 마세요!>로 시작해서, 244번 캐릭터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기가 살아남자 <주님, 감사합니다!>하고 고백합니다. 또 여성 참가자인 240번 지영은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에게는 어릴 때부터 성폭력을 일삼았는데 <목사였다>고 말하며 목회자와 기독교인을 극악무도한 악인으로 묘사합니다. 문제는 기독교에 대한 이런 식의 이미지화가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구력이 높아지면서 세계인들의 인식에도 부정적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안타깝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게 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투영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라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오징어 게임>이 우리의 관심을 자극한 이유는 때마침 터진 <대장동 게임>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과 <대장동 게임>은 둘 다 <머니 게임>이고, <데스 게임>이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둘 다 설계자가 있고, 시행자, 진행 요원들이 있다는 점도 같습니다. 그러나 판돈에서는 456억의 <오징어 게임>이 조 단위까지 얘기되는 <대장동 게임>에 잽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드라마보다 더 황당한 <대장동 게임>에 허탈해하고 비참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몇 억, 몇 십억, 몇 백억에는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적어도 몇 천억, 몇 조원은 돼야 조금 관심을 보일까 말까입니다. 

이런 게 바로 K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성공이 싫지 않으면서도 뭔가 뒤끝이 개운치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 암울한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하루하루 대체 어떤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일까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오징어 게임>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이미 <오징어 게임>의 n번 참가자들은 아닌지...

 

참 두렵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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