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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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상대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지만 저의 경우는 먼저 말본새를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합니다. 그래서 말이 괜찮으면 일단 마음의 빗장이 풀리지만 말투가 거칠고 경박하면 경계하게 되고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됩니다.
다시 정치 계절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대권 도전을 선언한 여야 후보들의 현란한 혀의 향연이 막을 올린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뱉은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는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잘 봐왔습니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이 올무가 되어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또 파멸하기도 합니다.
논어가 가르치는 <군자>란 곧 <입을 잘 다스리는 자>입니다. <군자>의 <군>(君)은 다스릴 <윤>(尹) 밑에 입<구>(口)자가 놓여 있습니다. 이는 곧 세 치 혀를 잘 건사하면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되지만 혀를 잘못 놀리면 군자는커녕 한순간 소인으로 전락해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품격>(品格)이란 말도 그렇습니다. <품>(品)은 입<구>(口)자 세 개를 포개 놓은 것입니다. 즉 누구나 자신의 입으로 내뱉는 말이 쌓여 마침내는 그 사람의 <품격>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의 가르침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야고보서는 <혀는 곧 불이요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3:6)고 했고, <혀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3:8)고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잠언은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다 혀에 달렸다>(18:21)고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 보이>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옥에 갇힌 오대수(최민식)와 그를 가둔 이우진(유지태) 사이에 벌어지는 처절한 복수극입니다. 그런데 오대수는 영화 마지막쯤에 가서야 비로소 자신이 왜 그토록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됐는지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세치 혀의 죗값>이었습니다. 결국 오대수는 자신에게 15년간의 독방형을 내린 이우진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는 개보다 못한 인생>이라며 스스로 자기의 혀를 자르는 엽기적인 반성을 합니다.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너를 찌르는 것은 칼이 아니라 너의 과거>라고 했습니다. 지난 날 뱉은 내 말들과 행위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내 자신을 찌르는 치명적인 칼끝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가장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리스크는 바로 자신의 <세치 혀>입니다.
저는 가끔 밥을 씹다 혀를 깨뭅니다. 분명 잘 씹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혀와 이빨의 협업이 얼그러지면서 혀는 혀대로 이는 이대로 놀다 결국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그 때마다 몇 초 동안은 눈물이 핑 도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이렇듯 내 입 속의 세치 혀조차 내 맘대로 못하는데 하물며 나랏일이겠습니까?
대선판에 뛰어든 정치인들에게 충고합니다. 한순간의 말 재주나 혹세무민하는 궤변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훔치려는 생각은 아예 마십시오.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결국 누군가는 세치 혀 때문에 망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혀 때문에 흥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말이나 남을 희롱하는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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