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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침노하였는가 (삼상 27:8-12)

누구를 침노하였는가

삼상 27:8-12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9-10절).

죄의 뿌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으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에서 비롯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은 예외 없이 하나님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게 하며, 더 나아가서는 점차 그 하나님을 별로 두렵지 않다고 믿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의 운명에 이렇다 할 영향을 발휘할 수 없는 존재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나의 관심이 매사에 최우선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곧 전격 나의 관심을 바꾸어 삶의 우선순위를 변화시키는 일인 동시에 자기중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포용하는 삶으로, 나만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향해 옮아가는 결단에 다름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삶을 끝내 지향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면 결국  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의 생명은 속으로 병들게 됩니다. 몸은 함께 있는 것 같으나 실은 서로가 등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교회가 있다면 거기에는 결코 사랑의 온기와 활력이 없습니다. 모두가 외롭다고 하면서도 진정 사랑의 힘을 믿고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동체는 모두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실은 모두가 남의 자유를 제약하고, 또 누군가의 불행이 곧 자신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보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통절함이 자신의 통절함으로 이어지고 누군가가 배고프면 자기의 집을 터는 도둑이 생기고, 누군가가 깊이 좌절하면 자기가 억울한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악순환의 사슬을 깨닫지 못하므로 모두가 불행해 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라는 욕심의 미망에서 확실히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생존, 그리고 시글락을 주어 은거하게 한 블레셋 땅의 아기스까지 배려하고 자신에게 딸린 많은 식솔들의 필요도 충족시키며 더욱 안정과 힘을 키워갔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12절).


<적용>

-다윗의 블레셋 시글락 생활 1년 4개월(7절) 동안은 왜 한 편의 시편도 없을까요?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해했다는 <기르스>(8절) 사람은 어떤 족속이었습니까?

-다윗이 기르스와 아말렉의 전리품을 가지고 시글락이 아니라 가드로 가 아기스 왕을 만난(9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도>

주님, 다윗은 자신의 본거지인 시글락으로 가지 않고 왕도인 가드로 가서 아기스 왕을 만났습니다. 전리품 일부를 아기스에게 바침으로 그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다윗은 왕의 마음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도 들고자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저희에게도 큰 믿음을 주사 늘 공동체를 위하고 하나님의 분부에 충실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