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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누구를 침노하였는가  (삼상 2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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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누구를 침노하였는가</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삼상 27:8-12</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span>&lt;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gt;(9-10절).</span></p>
<!--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죄의 뿌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으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에서 비롯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은 예외 없이 하나님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게 하며, 더 나아가서는 점차 그 하나님을 별로 두렵지 않다고 믿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의 운명에 이렇다 할 영향을 발휘할 수 없는 존재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나의 관심이 매사에 최우선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span>그러므로 신앙이란 곧 전격 나의 관심을 바꾸어 삶의 우선순위를 변화시키는 일인 동시에 자기중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포용하는 삶으로, 나만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향해 옮아가는 결단에 다름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삶을 끝내 지향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면 결국</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의 생명은 속으로 병들게 됩니다. 몸은 함께 있는 것 같으나 실은 서로가 등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08 -->
<p class="p1"><span>만약 그런 교회가 있다면 거기에는 결코 사랑의 온기와 활력이 없습니다. 모두가 외롭다고 하면서도 진정 사랑의 힘을 믿고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동체는 모두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실은 모두가 남의 자유를 제약하고, 또 누군가의 불행이 곧 자신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보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통절함이 자신의 통절함으로 이어지고 누군가가 배고프면 자기의 집을 터는 도둑이 생기고, 누군가가 깊이 좌절하면 자기가 억울한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악순환의 사슬을 깨닫지 못하므로 모두가 불행해 집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span>그러나 다윗은 &lt;자기&gt;라는 욕심의 미망에서 확실히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생존, 그리고 시글락을 주어 은거하게 한 블레셋 땅의 아기스까지 배려하고 자신에게 딸린 많은 식솔들의 필요도 충족시키며 더욱 안정과 힘을 키워갔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lt;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gt;(12절).</span></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span>&lt;적용&gt;</span></p>
<!-- paragraph:p0014 -->
<p class="p1"><span>-다윗의 블레셋 시글락 생활 1년 4개월(7절) 동안은 왜 한 편의 시편도 없을까요?</span></p>
<!-- paragraph:p0015 -->
<p class="p1"><span>-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해했다는 &lt;기르스&gt;(8절) 사람은 어떤 족속이었습니까?</span></p>
<!-- paragraph:p0016 -->
<p class="p1"><span>-다윗이 기르스와 아말렉의 전리품을 가지고 시글락이 아니라 가드로 가 아기스 왕을 만난(9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span></p>
<!-- paragraph:p0017 -->
<p class="p2"><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span>&lt;기도&gt;</span></p>
<!-- paragraph:p0019 -->
<p class="p1"><span>주님, 다윗은 자신의 본거지인 시글락으로 가지 않고 왕도인 가드로 가서 아기스 왕을 만났습니다. 전리품 일부를 아기스에게 바침으로 그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 같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이렇듯 다윗은 왕의 마음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도 들고자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추구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저희에게도 큰 믿음을 주사 늘 공동체를 위하고 하나님의 분부에 충실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