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4w: 고린도후서 강해 13(고후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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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4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13
본문: 고후 8:1-7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의 주제는 헌금입니다. 헌금 가운데서도 특히 구제헌금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장 힘든 문제 중 하나가 헌금입니다. 가장 민감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헌금에 대한 설교는 안 하려고 합니다. 헌금에 대한 언급은 고의적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자칫하면 교인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이것으로 인해 교회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헌금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언급하고 싶지 않아도, 이와는 상관없이 교인들에게 헌금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아직도 헌금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중직자들의 절반 이상이 바른 헌금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십일조 헌금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른 헌금생활 없는 바른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가 제대로 회개하려면 지갑부터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그러나 헌금문제에 거리낌이 없으면 신앙이 잘 자랍니다. 헌금문제가 우리의 영적 성장에 발목을 잡습니다.
바울 당시의 고린도 교회에도 헌금생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헌금에 대한 인식, 태도가 모범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 재정적인 위기가 와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가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당부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재정적으로는 넉넉했기에 구제헌금에 동참하도록 바울이 종용하면서 모범사례로 마게도냐 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도 마게도냐 교회처럼 너희도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라고 합니다. “은혜”라는 말이 나옵니다. 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6절에도 나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7절 하반절에도 나옵니다. 계속해서 “이 은혜”라는 말이 나옵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받은 은혜는 어떤 은혜입니까? 드림의 은혜입니다. 은혜라고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받는 선물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리키는 마게도냐 교회의 은혜는 하나님께 드리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선물도 귀합니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은혜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없이 값지고 보배로운 은혜라는 겁니다. 우리는 드림의 은혜를 성취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성취하라, 이 은혜에 풍성하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바울이 모범사례로 제시한 마게도냐 교회는 좋은 여건과 풍족한 중에 연보한 것이 아닙니다. 2-3절입니다: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그들은 시련과 극한 가난 중에 헌금했습니다. 또한 풍성하고 넘치게, 힘껏, 어떤 이는 힘에 지나도록 연보했으며 자원해서 바쳤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헌금입니다. 좋은 시절,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넉넉할 때도 기꺼이 해야 하지만, 가난하고 환난 가운데서도 자원해서 드리는 것이 바로 헌금입니다. 따라서 헌금은 인색하면 안 됩니다. 후하고 넉넉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넉넉할 때 구제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시련과 어려움 가운데 했습니다. ‘극한 가난’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우면 헌금부터 줄입니다. 6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내 코가 석 자’라고 하며 합리화하거나 핑계대지 말고 힘껏 하라는 겁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드림의 은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5절입니다: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먼저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헌금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헌상입니다. 물질 이전에 먼저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헌금과 헌물보다 헌신이 먼저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기대하십니다. 돈 이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바쳐야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바로 이렇게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드림의 은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연보나 헌물은 우리 자신을 드리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이것이 올바로 되지 않으면 복채일 뿐입니다. 돈이나 물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 헌금이 하나님이 흠향하시기에 합당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우리 자신을 담아야 합니다. 은혜 가운데서 가장 값진 은혜, 연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보는 내 자신을 주께 드리는 헌신임을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나의 필요에 의한 은혜 보다 하나님께 드림의 은혜를 성취하십시다.
오늘 우리가 하나 더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이 드림의 은혜에도 심는대로 거둔다는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9장 6절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고 법칙이자 은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헌상에 절대 침묵하시지 않습니다.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감사에는 반드시 메아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연보를 드리고 거기에 내 자신을 담아 하나님께 헌상하면 우리가 희생하는 만큼 아름다운 열매를 수확합니다. 심은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상하십니다. 그러므로 드림의 은혜는 무한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은혜를 보다 풍성하게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꼭 자신을 헌상하는 온전한 은혜를 성취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린 만큼, 뿌리신 만큼 풍성한 수확을 얻고 복된 2008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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