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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w] 사무엘하 강해 25 (삼하 19:24-39)

20171206w 사무엘하 강해 25

삼하 19:24-39


(삼하 19:24-39, 개정)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누구나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고 어떤 비상상황에 처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드러냅니다. 본문은 다윗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태도인데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시므이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을 때 베냐민 지파 출신 시므이는 다윗 뒤를 따르며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저주하고 돌까지 던집니다. 결국 압살롬의 반란이 불발로 끝나고 다윗이 환궁하는데 그는 자기가 속한 베냐민 지파 사람 천 명과 함께 와서 다윗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빕니다. 19장 19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이런 유형의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람 말입니다. 부하들은 당장 그를 죽이자고 하는데 다윗은 그를 용서합니다. 


그런가 하면 므비보셋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24절을 보면 그는 사울의 손자고 다윗의 절친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요나단의 살아남은 유일한 혈육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그를 찾아낸 겁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므비보셋에게 다윗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죽은 요나단을 생각해서, 여인의 사랑보다 더한 사랑으로 자기를 위해준 요나단을 생각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므비보셋에게 행합니다. 다윗은 그에게 사울 왕의 재산을 다 돌려주고, 종까지 붙여 재산을 관리하게 합니다. 므비보셋은 왕궁에서 살게 하고,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합니다. 왕자 중의 하나로 여긴 겁니다. 그러자 그는 압살롬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태도가 매우 애매했습니다. 물론 그는 왕을 모시고 피난길에 같이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다윗 왕의 피난 길을 동행합니다. 사무엘하 16장 3절입니다.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시바는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다고 한 겁니다. 순간 다윗은 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어지는 4절입니다.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이 굉장히 서운했던 겁니다. 그런데 본문 24절 이하를 보면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 나타납니다. 25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그러자 므비보셋이 이렇게 말합니다. 26절입니다.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므비보셋과 그의 종 시바의 진술이 엇갈립니다. 


우리는 므비보셋의 변명이 진실인지, 시바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의 당시 태도가 모호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다윗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합니다. 29절입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이 터지면 애매한 자리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상황이 확실해지면 이긴 쪽으로 가서 붙는 기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누구보다 다윗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지만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다가 다윗의 신임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음은 31절 이하에 나오는 바르실래입니다. 바르실래는 17장에도 나오기에 이미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다윗의 피난길에서 만난 가장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을 헌신적으로 사심 없이 도왔습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헌신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다윗을 돕고 싶어도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란군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쿠데타가 성공하게 되면 다윗의 부역자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다윗과 함께 피난길에 오르거나 그를 돕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바르실래는 피난길에 지친 다윗 일행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합니다. 피난길의 필수품과 비상식량 등을 다 공급했습니다. 


이제 반란군이 진압되고 환궁 길에 오른 다윗에게 바르실래가 다시 나타납니다. 그는 배웅 인사차 온 것입니다. 33절 이하입니다.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본문 마지막 절인 39절입니다.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이런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우리는 바르실래와 같아야 합니다. 본문이 소개하는 몇 가지 인간 유형 가운데 단연 바르실래가 우리의 사표입니다. 우리도 바르실래처럼 주님을 위해 그렇게 결단하고 사심 없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죽음을 앞두고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열왕기상 2장 7절입니다.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울 때 이미 80세였기에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의 아들들을 챙기라고 하며 죽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온갖 모험을 감수하면 반드시 당대 뿐 아니라 자식 대에도 은혜가 미칩니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다윗이 유언으로 남기며 당부하겠습니까? 우리도 주님을 위해 희생하면 우리 자녀를 잊지 않으십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를 기억하며 그처럼 주님을 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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