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1w] 사무엘하 강해 5 (삼하 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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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w 사무엘하 강해 5
삼하 5:1-16
(삼하 5:1-16, 개정)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드디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평정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 지난 7년 반 동안 나라가 내분 상태에 있었습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원래는 다윗이 정통성을 가진 제2대 왕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죽은 직후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유다를 제외한 다른 지파들을 다스리게 함으로써 양 세력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넬도 다윗의 부하 요압에게 살해 되고, 이스보셋도 부하 두 명에게 살해 되고, 그를 죽였던 두 사람도 다윗이 처단합니다. 1절 이하입니다.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립니다.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왕으로 다윗을 세운 겁니다. 다윗이 처음 왕이 된 때가 30세입니다. 그때부터 7년 반 동안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만을 다스렸습니다. 이제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3년간 통치합니다. 초대 왕이었던 사울도 40년을 통치했고, 다윗도 40년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것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헤브론은 남쪽으로 치우쳐 있었기에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기에는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예루살렘을 다윗 성이라고도 부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여부스족이라는 가나안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즉 예루살렘은 가나안 정복 때도 여전히 남아 있던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산 위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6절입니다.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그러나 다윗은 그 성을 정복합니다.
예루살렘은 지중해로부터 동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해발은 770미터 고지대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라고도 부르지만 시온성이라고도 합니다. 예루살렘이 시온산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온은 건조하고, 바람은 많았습니다. 땅은 척박하고 물은 귀한 도시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굳이 수도로 삼은 것은 많은 생각을 해서 그렇게 판단한 겁니다. 무엇보다 팔레스틴에서 예루살렘은 거의 완벽한 중앙에 있습니다. 남북을 하나로 통합하는 가장 이상적인 위치가 예루살렘이었던 겁니다. 또한 당시는 예루살렘이 남이나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여부스족이 살던 중립지대였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3면이 깊은 계곡입니다. 안보적 차원에서 최적지라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를 주도면밀히 따져보고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예루살렘을 삼은 겁니다. 수도를 정한 후 다윗은 언약궤를 그곳으로 옮겨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루살렘은 정치와 종교의 명실상부한 중심이 됩니다.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은 지금 영토의 5배였습니다. 10절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11절 이하입니다.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주변 나라 두로가 다윗에게 사절을 보내고, 백향목과 돌을 보내며 석수와 목수도 보냅니다. 왕궁을 지어 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역사하시고 복 주신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고 복 주셔서 누리는 복임을 알았다는 겁니다. 다윗은 이미 처첩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온 이후에는 더 많았습니다. 나라도 크고 부강해졌지만 다윗의 가족도 훨씬 더 불어났습니다. 사실 이게 훗날 다윗에게는 모진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당시 다윗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잘 되면 누구나 교만하기 쉽습니다.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뛰어난 인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겸손과 감사가 그를 더욱 복 있게 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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