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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w] 사무엘상 강해 25 (삼상 16:14-23)

20170111w 사무엘상 강해 25

삼상 16:14-23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본문 14절과 13절은 대조적인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베들레헴까지 가서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새로이 기름 부은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순간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4절에 보이는 사울, 하나님이 버리신 사울은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다윗과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 두 사람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이때부터 두 사람의 운명이 확실히 갈립니다. 다윗은 크게 흥했고, 사울은 급속히 무너지고 망가졌습니다. 우리가 왜 성령충만해야 하는지,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를 이 두 사람을 통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14절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들어가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라는 것은 악령도 여호와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악령이라 해서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악령도 하나님의 제어 아래에 있습니다. 욥기를 보십시오. 사탄이 욥을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가면서 극단적으로 시험하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이 욥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사탄은 하나님이 그에게 많은 소유물을 주시니까 그렇지 그것을 제하면 욥이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사건과 크고 작은 모든 일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아래에 있습니다. 악령의 역사마저도 하나님의 부리심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이 그 악령의 역사까지도 당신의 뜻을 이루는 데 이용하십니다. 사탄에게 시험을 허락하심으로써 욥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과 칭찬이 옳았음을 증명하셨듯이, 불순종한 사울 왕을 징계하셨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뜻 가운데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시험해서 우리의 신앙 체질이 강해질 것 같으면 허락하시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험 자체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은 결코 빈집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즉시 악령이 사울을 차지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같습니다. 성령의 전 아니면 악령의 전입니다. 사람은 성령 아니면 악령의 집이지 빈집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지배했는데, 그 영이 떠나자마자 악령이 지배합니다. 성령이 떠나면 당장 악령이 그 빈집을 차지하고 앉습니다. 지금까지 악령이 차지하고 있던 사람도 성령이 악령을 몰아내면 새로워집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가서 쉬기를 원하나 얻지 못하고, 나온 집으로 다시 가보니 그 집이 청소되어 있어서 더 악한 귀신을 데리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악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의식하든 못하든 누구나 성령의 지배 아니면 악령의 지배입니다. 빈집은 없다는 겁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으면 그 사람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성령의 궁극적 목적은 영생이지만, 악령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은 선해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악령의 목적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굿하는 것을 보면 밀고 당기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아파서 굿하면 낫는가 싶다가 다시 굿을 하게 만듭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성령에 감동되어 시도 쓰고 곡을 짓습니다. 사울이 악령에 시달리다 못해 수금 잘 타는 사람을 찾습니다. 다윗이 불려옵니다. 이렇게 다윗과 사울의 첫 해후가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떠난 사울 앞에서 다윗이 영감 넘치는 연주를 선보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자 사울에게서 악령이 떠납니다. 사울이 다윗을 경호원으로 삼습니다. 23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사울이 악령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며 사울을 상쾌하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사울은 이때까지도 다윗의 정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미 다윗이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으로 하여금 왕궁에서 왕의 수업을 받게 하신 겁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성령이 임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게 합니다. 본인도 좋을 뿐만 아니라 이웃도 상쾌하게 합니다. 늘 성령충만한 상태에 민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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