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8w 여호수아 강해 21(수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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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8w 여호수아 강해 21
수 24:1-5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죽음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 수령들, 재판장, 관리들, 곧 지도자들을 불러 1차로 최후 당부를 했습니다. 23장 12절 이하에서 특별히 강조한 것은 완전히 진멸하지 못했거나 남은 가나안 원주민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동맹을 맺거나 혼인하지 말라고 엄격히 당부했습니다. 만일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혼인하면 결국은 그들이 너희의 발에 올무가 되고,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 너희를 멸망케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원주민들의 문화와 우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잡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에 가사에서 들릴라가 나와 삼손을 잡았고, 가드에서 골리앗이 나와 이스라엘을 농락했고, 아스돗에는 다곤의 신전이 들어섰고, 결국 하나님의 법궤마저 거기에 감금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인 24장에서도 여호수아의 유언과도 같은 최후 당부가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백성까지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세겜에 모았습니다. 세겜은 예루살렘으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으로,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과 저주의 산인 에발산 사이에 있는 넓은 평지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진입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분부대로 두 패로 갈라져, 한 무리는 그리심산에 올라가 축복을 선언하고, 다른 한 무리는 에발산에 올라가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율법을 좇아 살면 그리심산에서 선포한 복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제 소견대로 살면 에발산에서 선포한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입체적인 퍼포먼스가 행해졌던 곳이 세겜입니다. 그 저주와 축복의 땅 세겜 광장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모두 모아놓고 고별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택하시고, 누구를 통해 인도해 오늘에 이르게 하셨는지를 확인합니다. 2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을 섬겼다고 합니다. 데라는 뼈대 있는 가문의 사람입니다. 데라는 엄연히 노아의 후손으로 10대손입니다. 창세기 11장은 셈의 족보입니다. 24절 이하입니다.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는 노아와 셈의 후손으로 믿음의 가계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으나 그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강 저쪽은 티그리스와 유브라데강 저 편 갈대아 우르를 말합니다.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남쪽입니다. 페르시아만 근처입니다. 갈대아 사람 곧 바벨론 사람들의 신인 달의 신을 섬기고 살았습니다. 우르는 빛나다는 뜻의 <오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달의 신을 의미합니다. 데라는 하나님 신앙을 물려받은 노아와 셈의 후손이었지만,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들이 섬기던 달의 신을 신봉하며 살았습니다. 데라가 어떻게 갈대아 우르에서 살게 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는 바벨론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달의 신까지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환경과 문화가 이토록 중요합니다. 지금 그 사람이 어디에, 누구와 교제하며 사느냐, 남편과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운명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오랜 전승에 의하면, 데라는 우르에서 바벨론 사람처럼 달의 신을 섬긴 정도가 아니라, 우상제조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빌어 주십니다(창 12장). 이 대목에서 재밌는 전승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 집을 떠나며, 우상들을 다 부수고, 가장 큰 우상에게 망치를 손에 쥐어 줬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아버지 데라가 작업실에 들어서니 우상들이 다 부서져 있어서, 아브라함을 불러 자초지종을 캐묻습니다. 아브라함은 저 망치를 쥐고 있는 큰 우상이 다른 것들을 부쉈다고 하니, 아버지 데라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어떻게 나무 우상이 다른 우상을 부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버지에게 우리가 왜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긴단 말입니까 라고 말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해 함께 하란을 떠났다고 합니다.
데라는 그 우르를 나온 뒤에 하란에서 205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성도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엄연히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지만, 세상과 짝하지 않고 하늘을 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성도(거룩한 무리)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룩이라는 의미가 바로 구별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면 하나님은 우리가 거기에서 나와 새 출발하기를 바라십니다. 마치 우르에서 당장 떠나기를 명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