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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1w 신명기 강해 69(신 32:41-43)

20150401w 신명기 강해 69

신 32:41-43


[41]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모세의 노래 마지막 소절입니다. 주제는 대적에게 보응하심입니다. 정의에 입각하여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성경이 보복하지 말라는 것은 유야무야 넘어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보복과 심판을 가장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편견과 고정관념, 사심 때문에 공정하게 판단하거나 심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공정하고 공의롭게 심판하여 최상의 보응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피살자, 포로된 자의 핏값을 따로 물으시고, 대적의 우두머리를 엄중하게 죗값을 물으십니다. 일방적으로 내가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가장 공의롭게 갚으십니다. 따라서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날카로운 칼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대적들에게는 이렇게 그야말로 칼처럼 복수하시는데, 자기 땅과 자기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속죄하십니다. 사실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벌하십니다. 원수들은 그들의 죄에 따라 심판하고 응징하면 됩니다. 하나님께는 화살이 있고 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 하여 죄를 짓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원수들처럼 악한 짓을 합니다. 그래서 속죄하신다고 했는데 사실 이 속죄가 쉬운 게 아닙니다. 심판과 응징은 쉽지만, 속죄는 쉽지 않습니다. 잘못에 대해 무조건 속죄하는 것은 공의롭지 못합니다. 무조건 용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상하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 활로 쏘고 칼로 베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땅과 백성은 속죄하신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대속이 나옵니다. 구약 때는 제물을 바쳐 내 대신 제물을 응징하심으로 나를 속하게 하였습니다. 희생제물은 하나님 백성의 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차마 하나님이 당신 백성을 징계할 수 없으니 양이나 소를 죽여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제사는 완전한 게 아니었습니다. 보다 완전한 단계로 가기 위한 과정이요 예시였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속죄방식은 십자가입니다. 구약의 희생제물은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불완전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애꿎은 짐승을 희생한다는 윤리적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보다 완전한 대속의 제물이 되사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어 모든 택하신 백성의 죄를 한 번에 다 처리하셨습니다. 짐승의 피로도 속죄를 받았는데, 흠 없고 티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사하지 못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9장 13-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주님은 우리 죄와 죽음,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보다 아름답고 고맙고 위대한 분은 없습니다. 우리에겐 주님이 제일 소중합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들은 가장 공정하게 심판하시고, 우리 죄는 당신의 온몸과 존재를 바쳐 속죄하셨습니다. 무얼 더 바랄 수 있으며, 주님이 우리를 위해 무얼 더 하셔야 합니까? 완전하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처리하셨습니다. 대속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며 묵상하는 남은 고난주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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