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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w 신명기 강해 44(신 19:14-21)

*녹화 음질이 좋지 못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140917w 신명기 강해 44

신 19:14-21

[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6]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17]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18]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19]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14절은 경계표에 관한 말씀입니다.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처음 땅을 배분할 때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재산이나 이익이나 인권이나 사생활을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도 이런 분쟁들이 많습니다. 남의 영역을 침범해서 일어나는 분쟁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에 조심해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사회를 구성하게 되면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예상하고 미리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만약 남의 영역을 범하면 배상해야 합니다. 침범한 만큼 배상해야 합니다. 


15-20절은 증인과 위증에 관한 율법입니다. 어떤 일을 확정하거나 판단할 때는 반드시 증인이 필요한데, 2-3사람이 그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할 때 그 사건을 사실로 확정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보면 볼수록 놀랍습니다. 현대법에도 이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증인이 있어야 하고, 그 증인은 한 사람만이 아니라 반드시 2-3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증인이 법정에서 위증을 했을 경우는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반드시 그를 처벌하고 징계하라고 합니다. 얼마 만큼입니까? 위증을 통해 거짓 증인이 노린 것만큼 위증자에게도 피해를 주라는 것입니다. 18-19절입니다. “[18]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19]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이 사실을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위증을 하지 않을 것이니 경계를 삼으라고 합니다. 


얼마나 법이 엄격한지 모릅니다. 마지막 21절을 보십시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구약의 율법이 말씀하는 처벌, 보복의 양형기준을 말씀하는 구절입니다. 이것의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억울한 사람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가해자의 벌이 약하면 피해자가 억울합니다. 그래서 형평에 맞게 하라는 겁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아직도 이 율법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둘째, 과도한 보복을 금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부러뜨렸을 뿐인데 가해자의 다리를 자르면 안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보복은 자칫 과다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기에 그 수위를 정한 겁니다. 피해자가 억울한 경우도 막고, 가해자가 과도하게 보복을 당하는 것도 막는 의도입니다. 그러므로 21절은 율법이 정해 준 양형기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고 의로운 분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의 산물입니다. 율법이 정하고 있는 양형기준도 하나님의 공의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응징하십니다. 죄를 짓고 악을 범한 만큼 응징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선을 행하면 그만큼 격려하고 상을 베풉니다. 하나님은 악이든 선이든 간과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생명은 생명으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입니다. 율법도 공의로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법입니다. 반드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인데, 이것을 넘어 가도 안 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5장 38절 이하를 보면, “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라고 하십니다. 남의 악의를 오히려 선의로 갚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율법은 동태복수를 하라고 하는데, 주님은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도 내밀라고 합니다. 이를 이로 맞서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고 합니다. 보복은커녕 남의 악의를 선의로 갚으라고 하십니다. 이게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복음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사랑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그렇습니다. 공의로우신 분인가 하면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공의는 죄를 범하면 정확하게 징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보복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주님이 홀로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성취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율법의 완성이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율법과 복음을 성취한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을 주님이 다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만 따르면 됩니다. 율법따로 복음따로 생각하면 모순 같지만 주님의 분부만 따르면 그것이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율법과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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