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02w 신명기 강해 2(신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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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2w
신명기 강해 2
신 1:6-18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8]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 [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4] 너희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15]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 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령하였느니라
지난 주 첫 시간에는 신명기의 두 가지 전제를 상고했습니다. 첫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결코 무위도식하는 곳이 아니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나안에 들어가 지켜야 할 율법이란 억압과 통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장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율법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 28장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근본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축복을 위한 것이지 징계나 저주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출애굽 1.5세대 내지는 2세대가 들어갈 가나안이 어째서 약속의 땅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왜 가나안이 약속의 땅입니까? 8절입니다.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승계한 이삭과 야곱에게도 계속 다짐해온 땅이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는 대목인 아브라함 소명 장면에서 봅니다. 창세기 12장 1-2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절 하반절에서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이 가나안입니다. 가나안이 왜 약속의 땅인지는 바로 여기서부터입니다. 이 약속이 이삭과 야곱에게 계승됩니다. 결국 모세 시대에 와서 출애굽 세대 때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야곱의 아들 요셉도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이후 거기서 총리대신이 되었다가 110세에 애굽 땅에서 죽습니다. 창세기 50장 24-25절입니다.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토록 철저하게 믿었습니다. 내 당대가 아니면 후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도 이런 유언을 남기는 것입니다. ‘내 해골이라도 메고 가서 가나안에 묻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성경이 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의 약속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을 사모하고 그곳을 향해 행군하다가 결국은 가나안 문턱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저 영원한 약속의 나라인 천국을 바라보며 광야 행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천국의 문턱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이 가나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대한 소망이 흔들리거나 확신이 무너지면 불행해집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대망하고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 문턱에 다다랐듯이 우리도 천국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야 합니다. 에서를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 약속이 담보된 장자권을 허투루 생각하다 결국 실패했습니다. 성경은 에서에 대해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장자권은 하나님의 복의 약속이 계승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에 하나님 약속이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에서는 그 장자권을 하찮게 여기며 하나님의 약속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살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아무리 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당신이 말씀하신 바를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회의를 품지 마십시오. 하나님 약속의 신실함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따르며 자신의 장자권을 허무하게 팔지 마십시오. 끝까지 약속을 붙잡고 사십시오. “이제 너희 앞에 그 땅이 있으니 들어가 차지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기까지 우리는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서둘러서 준비한 조직이 있습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각 지파에 수령을 세워 공정한 재판을 하게 했습니다. 광야에서는 모세가 직접 율법으로 치리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입성하면 모세는 거기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들어준 조직이 재판 시스템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영토가 있고, 국민이 있으면 그 사회를 유지하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재판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제일 먼저 조직한 게 재판관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질서유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질서유지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법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재판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는 재판의 원칙을 제시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쌍방 간 공정하게 재판해야 합니다. 16절입니다.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 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생각해 보십시오. 이때는 재판의 역사도 없었고, 재판에 노하우가 있던 시대도 아니고, 재판 문화라는 게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제시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런 원칙이 적용되면 얼마나 공정하겠습니까? 어느 나라나 외국인으로 재판을 받으면 불이익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의 잣대로 공평하게 재판하라고 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재판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심판은 하나님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을 심판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율법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관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 얼굴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내가 하나님을 대신해 집행한다고 재판관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기에 교만하거나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해 버립니다. 매우 올바른 지침입니다. 우리 시대의 재판관들도 이렇게 재판에 임한다면 억울한 사람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기에 불공정한 일과 억울한 일이 발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재판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옛날 이런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신세대들에게 그 땅에서 보다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입니다. 법이 필요해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을 집행할 각 지파의 수령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챙기고 필요한 복과 은혜를 주시는 분이신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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