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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w 신명기 강해 1(신 1:1-4)

20130925w

신명기 강해 <1>

신 1:1-4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 [4] 그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주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주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신명기는 어떤 내용의 책입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행한 모세의 설교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셨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강조하고 새롭게 해석한 말씀입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인데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갈 세대는 출애굽 세대가 아닙니다. 탈출 1.5세대 내지는 2세대입니다. 탈출 1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모세도 이 설교 마치면 죽어야 될 운명입니다. 가나안 신세대를 안내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세대는 신세대입니다. 율법 세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적으로 율법에 대해 어둡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가나안 신세대 앞에서 다시 한 번 율법을 새롭게 조명해 준 것입니다. 


신명기를 공부하면서 확인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절대 무위도식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곳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곳입니다. 전쟁을 해서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입성을 절대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원주민을 제압하고 몰아낸 후 그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세상에서 마귀의 종으로 살던 우리를 주님이 출애굽시키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출애굽했다는 것입니다. 구약 때는 모세를 보내셨으나, 신약 때는 주님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출애굽시킨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지만 실제는 우리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삶입니다. 우리 안에는 옛 사람이라는 원주민이 있습니다. 이 원주민을 제압하고 정복해야 합니다. 옛 사람을 죽이고 벗어버리는 일,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 주민을 정복하고 차지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천국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가 바로 나의 옛 사람과의 싸움입니다. 내가 얼마나 내 옛 사람, 내 안의 원주민을 제압하느냐가 우리 성화의 정도입니다. 옛 사람에게 끌려 다니면 성화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외부의 적은 하나님이 막아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할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외부의 세력은 하나님이 막아주십니다. 불의의 사고, 사업의 어려움, 크고 작은 시련을 주님이 방어하십니다. 그러나 내부의 적, 곧 원주민은 우리 힘으로 제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아말렉과의 전투도 사실은 모세가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했기에 아말렉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전쟁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외부의 적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고 막아주십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입성해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싸움은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끝까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 이하입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것은 순수한 우리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과제요 몫입니다. 우리가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할 내 안의 적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다. 지금 모세의 설교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가나안에 들어가 무위도식하는 게 아니라 그곳 원주민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니 그러므로 긴장하고 깨어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내 안의 적, 옛 사람과의 싸움은 내 몫임을 명심하십시오. 여기에 영성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화됩니다.


둘째는 신명기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신세대에게 율법을 조명해주는 말씀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율법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은 이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기준을 넘으면 엄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신명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합니다. 이것을 어기면 벌주자는 게 아니라 이것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벌보다는 복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신세대도 율법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율법의 근본 취지는 하나님이 복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30장에는 율법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 새로운 해석과 설명을 마무리합니다. 15절 이하입니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이것이 신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새로이 선포하고 해석해 준 다음에 결론을 맺는 모세의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에 화와 저주가 나오는데, 그보다 생명과 복이 더 강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이란 인간을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나 목적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최후 말씀의 요지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근본 취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헌법은 국민을 심판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반대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제정한 것입니다. 무법천지면 훨씬 더 우리 삶이 불행해 집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율법이 필요할까요?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율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시대를 살고 있어 과거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율법의 의미가 좀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를 성화되게 합니다. 비록 우리가 복음 시대를 살지만 율법에 충실할 때 우리 삶이 거룩해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에 가까워집니다. 율법이 성화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에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주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왔다’ 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항상 율법의 근본 정신을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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