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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0w: 예레미야 강해 86(렘 51:1-10)

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수요성경공부
2011년 4월 20일 예레미야 강해 86
본문: 렘 51:1-10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심령을 부추겨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있는 자를 치되 [2] 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여 그의 땅을 비게 하리니 재난의 날에 그를 에워싸고 치리로다 [3] 활을 당기는 자를 향하며 갑옷을 입고 일어선 자를 향하여 쏘는 자는 그의 활을 당길 것이라 그의 장정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며 그의 군대를 전멸시켜라 [4] 무리가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질 것이요 관통상을 당한 자가 거리에 있으리라 [5]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 받은 홀아비는 아니니라 [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7]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8] 바벨론이 갑자기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말미암아 울라 그 상처를 위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9]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 [10] 여호와께서 우리 공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51장 역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심령을 부추겨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있는 자를 치되.” 여기서 멸망시키는 자는 누구입니까? 바사 곧 페르시아입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입니다. 하나님이 바사를 부추겨서 고레스 왕을 충동질해서 초강대국 바벨론을 치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당신이 필요한 사람, 당신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종으로 부리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나라 혹은 그 사람의 마음을 충동질하십니다. 사실 바벨론은 이때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바사도 그 당시에 작은 나라는 아니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바벨론에 맞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도 바벨론을 위협할 수는 없다고 바벨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충동질하셔서 바벨론과의 전쟁을 결심하게 합니다. 당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사 그 전쟁을 결심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게 크고 어려운 일일 때는 아무리 설득하고 아무리 달변으로 이해시키려 애를 써도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언변, 화술, 얄팍한 말재간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 심령을 부추기셔야 사람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주로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사야합니다. 그래야 일이 성사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인간의 말 재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특히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당시 바사가 바벨론과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바사가 선전포고를 하기에는 바벨론이 막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니까 고레스가 바벨론과의 전쟁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방심하고 있던 바벨론을 초토화시킵니다. 3절 하반절을 보면 “그의 장정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며 그의 군대를 전멸시켜라”고 합니다. 이 말씀 그대로 전개되었습니다. 저도 전에는 내가 감동스런 예화나 문구로 설교를 준비해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해야지 하면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치한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말씀을 통해 위로를 얻게 해야 합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셔야 합니다. 실제 사람들을 상대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확신을 갖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일이 아름답게 성사되고 뒤탈도 없고 하나님이 끝까지 그 일을 관장하시고 수습하시기에 결말이 아름답습니다. 누구도 바사의 고레스가 세계 최강 바벨론을 향해 선전포고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사의 고레스를 감동하게 하니 바벨론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며, 또한 바벨론이 갑자기 넘어집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하나님이 유다 백성만큼은 거기서 도망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바벨론이 멸망할 때 유다도 따라 망하게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온갖 무기를 지닌 바벨론은 멸망하고, 노예살이하던 유다는 구원한다는 겁니다. 5-6절입니다. “[5]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 받은 홀아비는 아니니라 [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유다가 하나님께 범죄해서 징계를 당하는 중이긴 하지만 버림받은 홀아비는 아닙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포로로 잡아갈 때 주로 남자를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홀아비라고 하는 겁니다. 지난 70년간 그야말로 짐승처럼 노예생활을 해 왔을망정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택함을 받은 선민에게는 징계는 있으나 저주는 없습니다. 버림은 없습니다. 징계는 이방인보다 더 많습니다. 왜냐면 사생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하면 그때마다 간섭하고 매를 드십니다. 하나님이 안 믿는 사람보다 우리를 더 많이 징계하십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버림받지는 않습니다. 지난 70년간 모진 징계를 겪게 하셨지만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바벨론이 패망할 때 거기서 탈출하게 하여 시온으로 복귀하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말씀이 있습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보복은 보상과 같은 말씀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사실 구약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이 보복의 하나님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백성들이 잘못을 하면 반드시 징계하시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보복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냥 지켜만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때가 차면 보복하십니다. 징계도 하시고 상도 베푸십니다. 

그런데 신약의 하나님 이미지는 다릅니다.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용서와 관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왜냐면 이미 십자가를 정점으로 보복의 때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복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주님이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보복을 한꺼번에 십자가에서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에게 보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앞에 가로막고 서서 하나님께 변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 대신 당했다’고 변호하십니다. 그래서 은혜와 사랑의 시대가 신약의 시대요 지금 우리의 시대입니다. 지금이 보복의 때라고 하면 우리는 정말 과거 유대 백성 못지 않게 삶이 고달팠을 겁니다.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공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공의를 발동해서 우리로 하여금 바벨론에서 70년간 고된 노예살이를 하게 하셨으니 이제 시온에 돌아가 여호와의 공의와 우리가 다 죄값을 갚았다는 것을 선포하자는 뜻입니다. 끝까지 당신의 공의를 관철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시온에 돌아가 만방에 선포하자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세상을 향해 선포해야 합니다. 그게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막중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 공의에 맞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유감없이 우리 대신해 징계 당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만방에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들도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이룩하신 징계의 시대의 폐막을 알리고 그들도 그 십자가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하는 게 우리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보복의 시대는 폐막되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용서와 사랑, 관용의 시대를 개막하셨습니다. 우리만 알고 있을 게 아니라 시온에서 만방에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과거 70년을 바벨론에서 노예살이했던 유다 백성의 사명이자 은혜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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