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0323w: 예레미야 강해 82(렘 50:6-10)

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수요성경공부 http://thegreen.tistory.com
2011년 3월 23일 예레미야 강해 82
본문: 렘 50:6-10

 [6] 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7]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키며 그의 대적은 말하기를 그들이 여호와 곧 의로운 처소시며 그의 조상들의 소망이신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인즉 우리는 무죄하다 하였느니라 [8]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양 떼에 앞서가는 숫염소 같이 하라 [9] 보라 내가 큰 민족의 무리를 북쪽에서 올라오게 하여 바벨론을 대항하게 하리니 그들이 대열을 벌이고 쳐서 정복할 것이라 그들의 화살은 노련한 용사의 화살 같아서 허공을 치지 아니하리라 [10] 갈대아가 약탈을 당할 것이라 그를 약탈하는 자마다 만족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난 주일에는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왜 바벨론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냐면, 당시 바벨론은 귀신의 나라요, 사치와 치부로 흥청망청하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옛날 화려하고 높았던 바벨탑을 허무셨던 것처럼 그렇게 바벨론을 무너뜨리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유다에 관한 말씀입니다. 6절 상반절입니다.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떼로다.” 그런데 내 백성 유다가 길을 잃어버린 양떼가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유다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바벨론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70년 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해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바벨론에 끌려 간 유다 백성들이 지난 70년간 노예처럼 노역에 내몰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백성인데 길 잃은 양떼라고 부르십니다. 왜 그들이 길 잃은 양떼가 되었습니까? 목자들이 그들을 잘못 인도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목자들은 누구입니까? 유다의 왕, 제사장, 선지자들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양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해 결국 유다 백성이 길 잃은 양떼가 되었다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양으로 표현합니다. 양은 짐승 가운데 그 운명이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렸습니다. 다른 짐승과 비교되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만큼 양은 자기 방어력도 없지만, 방향감각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낙농국을 보면 수천 마리의 양을 이동시킬 때 목자가 앞에 섭니다. 다른 짐승들은 대개 주인이 뒤에 갑니다. 늘 가던 초지나 우리를 잘 기억합니다. 그런데 양은 늘 가던 초지도 못 찾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돌아올 때도 목자가 앞장 서야 합니다. 아침에 초지로 나갈 때도 목자가 앞장 서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의 목자인 백성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엉터리로 인도해서 길 잃은 양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물론 예레미야 같은 신실한 목자는 다 박해하고 훼방해서 백성을 지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입을 틀어막고, 감옥에 넣거나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결국 백성이 길 잃은 양떼가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나라나 목자들이 문제입니다. 백성은 어차피 방향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그 양떼는 길 잃어버린 양이 됩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 쓰나미 참사, 원전 폭발 이후 처음에는 일본 국민이 잠잠하더니 진상이 드러나자 곳곳에서 불만도 드러내고 시위도 벌입니다. 일본 지도자들의 관리능력이 함량미달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의 문제도 목자들의 문제입니다.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가 문제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위기상황인데 이게 다 지도자들이 만든 겁니다. 연합단체 지도자들, 교단 지도자들, 개 교회 지도자들인 목회자들의 타락과 탐욕이 결국 지금 양떼의 운명을 길 잃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냉정합니다. 어설프게 잊거나 사실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70년 전에 있었던 유다 멸망의 원인을 정확히 기억하며 짚어냅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잘못 인도했다고 하십니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는 6절의 말씀에서 산과 언덕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바알의 산당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보다 모범을 보이고 성실히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백성을 격려하고 지도해야 할 목자들이 백성을 오도해서 바알을 섬기게 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했다는 겁니다. 목자들이 백성들을 오도해서 바알을 예배한 나라가 하나님의 복을 받겠습니까? 더구나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는 택한 백성이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바알의 산당을 찾아가 거기에 분향했으니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난 70년간 바벨론에서 모진 노예살이를 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런데 이제 그 복무기간이 끝났다고 하십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양 떼에 앞서가는 숫염소 같이 하라.” 곧 바벨론이라는 포로지에서 해방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북쪽의 바사, 곧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을 들어 바벨론, 곧 지금의 이라크를 심판하시고 그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해 유다 백성을 귀환케 하겠다는 예언입니다.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이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계신 겁니다. 양떼는 앞장서서 가지 못하지만 염소는 앞에서 곧잘 갑니다. 그렇게 양이 아니라 숫염소처럼 바벨론에서 나오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용감하게 씩씩하게 신이 나서 뛰어나오는 숫염소처럼 그렇게 해방을 허락하시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유다 백성에게 감격적인 희망의 메시지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자기의 죗값을 다 치르면 자유가 주어지고 해방이 보장됩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70년 노예살이를 했다는 것은 유다 백성이 자기의 지은 죄만큼 죗값을 지불했다는 의미입니다. 죗값을 다 갚으면 하나님은 더는 형을 살리지 않습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석방하십니다. 죄지은 사람이 지은 죄에 상당한 감옥살이를 하면 풀려납니다. 어느 나라든 사법제도는 다 그렇습니다. 죄 지은만큼 벌을 주고, 의로운 일만큼 상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법제도의 원칙은 그렇지만 실제가 달라서 억울한 사람이 생깁니다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에 반드시 죄 지은 만큼 벌하고 의로운 일을 행한 만큼 상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죄와 허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주님이 대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옥 가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자유인입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가 갚지는 않았으나 주님이 대신 징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 유다 백성보다 얼마나 복 된 사람들입니까? 우리도 원죄와 자범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죄를 다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유다도 하나님의 백성이었는데, 유다는 잃어버린 양떼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따뜻한 우리에 있는 것은 주님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복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도 방향감각 없기는 유다 백성과 마찬가지이나,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문자 그대로입니다. 더 해석이 필요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쳐야 옳습니다. 늘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 중인데 더욱 의미 있게 지킵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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