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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가 잊어버린 또 하나의 별의 이름

<갈릴레오가 잊어버린 또 하나의 별의 이름>이란 한국 시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시의 영역을 넓힌 월북작가 김기림의 시모음집입니다. 1988년에서야 해금된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은빛 겨울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캔버스에서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까마득히 잊혀진 옛 들길의 추억들이 막 되살아나는 듯도 합니다. 그 시집에 실린 <바다와 나비>는 삼월이 다 되도록 여전히 오지 않는 봄, 아니 물러나지 않는 겨울을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이것은 단지 계절의 풍경화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비란 그저 달이 바뀌면 자동적으로 봄이 오겠거니 하는 우리들의 <순진함>이며, 때가 되어도 꽃이 피지 않는 삼월의 바다란 그런 순진함을 비웃는 영약하고도 거친 세상 풍경입니다. 

파랗기만 하면 무조건 청무우 밭인가 하여 내려 앉다가 그만 사납고도 차가운 겨울 파도를 흠뻑 뒤집어쓴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가녀린 나비, 어쩌면 여기저기서 잔뜩 상처만 입고 비틀거리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그렇게도 닮았는지요. 지금 우리는 만월이 되기엔 아직도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인고의 시간들을 저 삼월의 바다 위로 무심히 떠오르는 <시린 초생달>을 보며 뼈저리게 배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혹독했던 지난 겨우살이가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초생달>이었고, <삼월의 바다>였던 셈입니다. 일찍이 이렇게까지 팍팍하고 엄혹한 세월은 없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전세가, 물가, 유가 폭등의 어두운 그림자 앞에서 다들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9-10)라고 했습니다.

갈릴레오는 중세 암흑기를 과학의 이름으로 돌파하면서 최초로 천체의 모습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 주려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갈릴레오의 망원경으로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별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별입니다. 삼월의 바다가 아무리 시려도 이제는 봄이 지척입니다. 어제 오늘은 완연한 봄기운입니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던 경제도 새 봄과 함께 기지개를 켜며 조금이라도 더 밝은 표정을 짓게 되길 빌어봅니다.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며 다시 한 번 힘차게 서로를 격려합시다. 남의 절망을 도우며, <희망>이 바로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또 하나의 잊혀진 별의 이름>임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