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9w: 예레미야 강해 74(렘 47:1-7)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수요성경공부 http://thegreen.tistory.com
2011년 1월 19일 예레미야 강해 74
본문: 렘 47:1-7
[1]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3] 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4]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5]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6]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7]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
열방에 관한 두 번째 예언 대상입니다. 지난주는 애굽의 패망에 관한 예언이었는데, 오늘은 블레셋에 관한 예언입니다. 블레셋도 바벨론에 의해 망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역사의 주체는 누구십니까? 우리의 답은 자명합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이십니까? 원래는 역사가 없었습니다. 영원 안에 영원하신 존재이신 하나님만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셔서 담기 위해 시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시간을 창조하신 시점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시작되는 구체적인 시점을 ‘태초’라고 한 겁니다. 시간 곧 역사를 창조하시고 그 시간 안에 우주를 담으신 겁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소위 선민이 된 이스라엘의 역사, 유다의 역사 곧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구속사만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이방나라들의 역사 즉 세속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구속사와 세속사를 통틀어 우리는 보편사라고 합니다. 이 보편사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이 보편사의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운명만을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게 아니고 모든 열방의 운명도 역사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랫동안 착각하기를 하나님의 관심은 구속사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속사와 세속사를 가리지 않습니다. 구속사와 세속사는 인간이 만든 개념입니다. 하나님께는 다만 보편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못지 않게 열방에 대한 애정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대한 관심 못지 않게 세상에 대한 관심도 있으십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블레셋은 항상 이스라엘에 대해, 유다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열방 가운데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그 블레셋의 역사와 운명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과 애굽 뿐만 아니라 블레셋까지도 통제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통해 열방에 관해 예언하시면서 47장에서는 블레셋의 운명과 역사를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북쪽에서 일어나는 물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패망을 예언하실 때도 바벨론에 대해 묘사하시기를 ‘북방에서 남방에서 기울어 끓는 가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패망을 예언하시면서도 바벨론을 홍수 같은 물결이 밀려와 블레셋을 유린할 것이라고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바벨론의 군대가 엄청난 파괴력으로 홍수처럼 블레셋을 초토화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벨론 군대의 배후에 누가 계신다구요? 4절을 보십시오.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여호와가 바벨론 군대를 통해 블레셋 사람들을 유린하신다는 겁니다. 바벨론 군대의 블레셋 침공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고 징계입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는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해서 그렇지 모든 재앙과 전쟁, 사건 사고는 다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유명한 신학적 명제가 나온 겁니다. 이 말은 <사건으로서의 계시>라는 뜻입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치고 우연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구속사든 세속사든 역사는 어떤 의미로서든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겁니다.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다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보십시오. 블레셋이 바벨론에 망한 전쟁과 그 사건도 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개인사도, 가정사도, 교회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간섭하십니다. 때론 아픔도 겪고 기쁨도 얻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를 만나게도 하시고, 때로는 끓는 가마솥을 뒤집어 쓰게도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계시입니다.
그러면 블레셋은 왜 바벨론에게 유린당합니까? 왜 하나님이 그렇게 징계하셨습니까? 5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몸을 베었다고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해하며 우상숭배한 범죄를 고발하고 계신 겁니다. 성경은 자해를 금합니다. 자살도 극단한 자해행위입니다. 우리 몸은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왜냐면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잘 단속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건강에 소홀하면 벌 받습니다. 아픔을 당합니다. 특히 구약사상은 이게 철저했습니다. 아픈 게 죄값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죄입니까?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죄입니다. 하여간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는 다 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앙 차원에서 자기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자해하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블레셋은 이방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자해하며 우상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여호와의 칼이 쉬지 않고 그들을 유린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하면서 여호와의 칼이 블레셋을 난자한 겁니다. 자해하며 우상숭배한 블레셋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입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