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6w: 고린도후서 강해 6(고후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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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6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6
본문: 고후 4:1-15
[1]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13]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지난 주에는 수건 이야기였습니다. 옛날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서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광채가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나던 광채는 율법의 영광이요 광채였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범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얼굴에 수건을 덮었습니다. 그제서야 백성들은 모세에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3장 14절 이하입니다: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모세의 얼굴에 덮은 수건이 오늘까지도 유대인들의 마음을 덮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대하나 율법의 광채 곧 율법의 진수를 못 보고 있다는 겁니다. 만일 유대인들의 마음을 수건이 덮고 있지 않다면, 율법의 진수를 보았을 겁니다. 그들은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수건이 어떻게 벗겨집니까? 그리스도에게 나가야 합니다(16절). 이것은 악순환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지독한 율법주의자였는데 주님이 그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율법의 진수를 모르는가 하면, 옛날 모세가 썼던 수건이 아직도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수건이 벗겨지니까 전향합니다. 그리스도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에 우리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주님의 그 광채를 반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과 사명을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향의 원액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그 향을 세상에 흩날리는 사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명을 3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빛을 세상을 향해 반사하는 그리스도인의 고유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향기’(2장), ‘그리스도의 편지’(3장)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의 밀어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말씀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주님도 우리를 당신의 편지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 되지만 우리는 됩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들의 눈에 수건이 가리워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서는 비늘이 다 벗겨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아무리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광채를 반사하고,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어도, 다시 말해 우리 고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도 세상에는 여전히 유대인들이 율법에 대해 그렇듯이 복음에 대해 눈이 가려진 사람, 그 마음에 수건이 덮인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배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겁니까? 3절입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멸망당할 사람들입니다. 끝가지 안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 멸망당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 신들이 그 마음을 혼미케 한 사람들입니다. 4절 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 .” 마귀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복음의 광채 앞에서 승복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인 직분을 감당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낙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1절 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흔히 우리는 열과 성을 다해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의 소임을 다하면 세상이 우리 앞에 승복할 줄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신이 그 마음을 혼미케 한 자들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복음에 대해 눈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하다가 이런 자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낙심치 말라는 겁니다.
다음은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행하라고 합니다. 2절 입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우리가 그리스도께 받은 직분을 수행할 때,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행하라는 겁니다. 궤휼은 이 직분을 행함에 있어 아주 교묘하게 속이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하는데,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안 됩니다. 자신의 얘기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 말씀을 끌어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겁니다. 설교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요즘처럼 말씀이 어지러울까 싶습니다. 설교인지, 코미디인지, 약장수인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복음 전한다는 미명으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오히려 오직 진리를 나타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온갖 상술과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를 전파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전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5절).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 직분을 수행하는 자들이 꼭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행하고, 자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자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7절 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명품 도자기가 아니라 투박하고 맵시 없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이란 말은 토기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토기에 보배가 담겨있습니다. 보배는 곧 복음입니다. 또한 우리가 수행해야 할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소명, 직분, 성령 이 모두가 우리 안에 담긴 보배들입니다. 나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내 안에 이런 보배가 담겨있기에 내가 값진 존재입니다. 사명이 보배롭기 때문에 질그릇에 불과한 내가 보배입니다. 우리는 다 토기 입니다. 그런데 토기 안에 보배들이 담겨있기에 값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편은 이렇습니다. 8절 이하입니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긍휼입니다. 믿는 사람이라해서 시험과 고난이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시험과 고난을 겪어도 망하지 않습니다. 버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고난과 핍박을 통해 예수의 생명을 더 드러냅니다. 10절 이하입니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고난과 핍박을 통해 오히려 복음의 빛 곧 예수의 생명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질그릇에 담긴 보배로 말미암아 우겨쌈을 당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은혜로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삶에서도 복음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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