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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9w:고린도후서 강해 5(고후 3:6-18)

2008년 4월 9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5
본문: 고후 3:6-18

[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지난 주에는 3장 3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하나님의 편지’로 우리에게 보내신 것처럼 주님도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주님의 편지로 사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할 때, 이 안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은 새 언약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율법말고 복음을 삶으로 구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보고 세상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은 막연한 말이 아닙니다. 복음이 바로 새 언약이고, 주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새 언약을 율법과 대비시킵니다. 7절입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6절에서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의문으로 한다는 말은 율법으로 하는 것을 뜻하고, 영으로 하는 것은 복음을 뜻합니다. 7절의 돌에 써서 새긴 의문의 직분은 율법 곧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34장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면, 모세는 돌에 새긴 의문의 직분을 수행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물며 영의 직분 곧 복음의 직분을 맡은 우리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지 않는다면 되겠느냐는 뜻입니다. 율법에 복무하는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는데, 복음에 복무하는 너희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광채가 나지 않는다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은 정죄하자는 법이고 복음은 살리는 법인데, 이 살리는 법에 헌신하는 자의 얼굴에서는 더욱 밝은 광채가 나야한다는 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 직분이 얼마나 영예로운지를 율법과 대비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에서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썼습니다. 율법의 영광을 수건으로 가린 것입니다. 그 얼굴을 가린 모세의 수건이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그들의 눈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건은 모세가 얼굴을 가렸던 수건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두려워하자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덮은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의 영광이 가려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눈에서 수건이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14-15절입니다: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바울이 고린도후서 편지를 쓰고 있는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사람들이 율법을 보는 눈이 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보긴 하지만 그 진수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외식주의, 형식주의로 치달은 겁니다. 율법의 진정한 영광, 율법의 진정한 정신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건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수건이 덮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진 것입니다.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들이 제대로 율법을 볼 수 있었다면 왜 그들이 오늘날까지 메시아를 배척하겠습니까. 수건이 아직도 그들의 마음의 눈을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수건을 구체적으로 바울은 ‘완고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14절입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주님도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마 23:23).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의 회심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합니다. 이 비늘이 바울의 눈을 덮고 있었던 완고한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이 율법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했던 수건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뵙자 그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바울이 주님을 뵙자 16절말씀처럼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돌에 새긴 의문의 직분, 율법의 직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영의 직분, 복음의 직분을 가진 사람은 그들의 눈에서 수건이 벗겨진 사람들이고 바울처럼 그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인입니다. 18절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눈에 수건이 가려져 오늘날까지도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과는 달리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본다고 합니다. 왜냐면 언제든지 주께로 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마치 바울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주신 것처럼 우리 눈에서도 수건을 벗겨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볼 뿐만 아니라 주님의 얼굴에서 빛이 나듯 우리의 얼굴에서도 빛이 난다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의 얼굴에서 수건을 걷어주시고, 우리 눈에서 비늘을 벗겨주시기 때문에 주님의 얼굴의 광채처럼 우리 얼굴에서도 광채가 나게 하신다는 겁니다. 주님은 영광의 본체시고, 우리는 그 영광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분신이 된다는 뜻입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는 말씀이 바로 이 뜻입니다. 주님의 빛으로 우리도 빛을 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우리가 갖는 영예요 엄숙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고 우리도 복음의 영광을 발하면서 그리스도의 편지 역할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그 답은 18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의 영광을 보게 되고,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게 되고, 주의 영광을 내 얼굴에서 발하게 되는데, 이 모두가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주의 영의 역사입니다. 인간적인 의지나 노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영광을 보고, 주님의 형상으로 화하고, 그래서 이 시대에 주님이 세상을 향해 보내신 편지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셔서 늘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고, 주의 빛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광채를 내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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