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1124w: 예레미야 강해 66(렘 40:1-6)

푸른교회 조성노 목사 수요성경공부 http://thegreen.tistory.com
2010년 11월 24일 예레미야 강해 66
본문: 렘 40:1-6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바벨론 군대가 드디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달아나던 시드기야를 붙잡아 그의 눈앞에서 다 살해하고, 유다 고관과 귀족을 무참히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마저 뽑고 사슬에 결박해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 왕이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그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적국의 왕의 선대로 자유의 몸이 된 겁니다. 예레미야 뿐 아니라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도 반드시 구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도 있었습니다. 에벳멜렉에 대한 얘기는 더는 안 나와 확인할 길이 없으나 아마도 예레미야처럼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39장 18절을 보면 에벳멜렉에 대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누구나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에벳멜렉처럼 구원하십니다. 망하는 나라와 함께 망하게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누구를 통해서든 그를 구출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방침이자 공의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 바벨론 군대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지휘로 유다 포로들의 호송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실수로 예레미야까지 체포한 겁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8km 떨어진 라마까지 호송을 당합니다. 라마는 바벨론으로 끌고갈 포로들의 집결지였습니다. 다행히 이 사실이 느부사라단에게 알려지게 되고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에게 사과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4절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느부사라단이 말하기를 예레미야 마음대로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5절을 보면 사령관이 예레미야에게 양식과 선물까지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면 반드시 회복하십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동원하실 수 있습니다. 택하신 유다 백성을 징계하시기 위해 이방 나라 바벨론과 이방 왕 느부갓네살을 동원하시고, 필요하면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통해 당신의 종 예레미야를 지키며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본문 2절 이하를 보면 바벨론 군대 사령관이 예레미야에게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이것은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라 바벨론 군대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말입니다. 유다의 그 비극의 내력을 적국의 사령관이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읍에 이런 재난을 사전에 하나님이 다 선포하셨는데, 이제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겁니다. 민수기 22장에 발람 선지자를 나귀가 책망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귀를 통해 발람을 책망한 겁니다. 베드로도 미물의 닭소리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도 당신의 뜻대로 부르실 수 있고, 만물도 당신의 바라시는대로 얼마든지 다 부리실 수 있습니다. 환경도 여건도 우리의 삶의 조건도 얼마든지 요리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선한 도구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방인 왕을 심판의 도구로 쓰시고, 적국의 군대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을 통해 당신의 종을 지키시며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모든 사람이 죽거나 잡혀가는 와중에도 자유를 누리며, 유다에서 살든 바벨론에서 살든 최상의 조건에서 살아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이 좌절하거나 절망하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내가 처한 삶의 조건을 요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직후에는 느부갓네살의 배려로 자유의 몸이 되나, 어떻게 일이 잘못되어 라마까지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다시 느부사라단의 선대로 자유의 몸이 됩니다. 혹 여러분의 삶이 잘 나가다가 꼬이더라도 결코 실망하면 안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이 수습하시고 해결하십니다. 다 잡혀가도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라마까지 끌려가면서 이미 다 무너집니다.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립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위대한 조상이 된 것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까지 사흘 길을 가는 동안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떨결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집을 나서기는 했어도 모리아 산까지 가는 동안 얼마든지 곁길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항의하고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아브라함은 침묵하며 그 모리아 길을 갑니다. 묵묵히 잡아 바칠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까지 간 겁니다. 이게 대단한 겁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독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의 순종과 믿음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살려주실 것으로 믿었다’는 겁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체념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끝까지 모리아 길을 갔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이삭을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사실을 믿은 겁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이삭을 잡아 바쳐도 하나님은 그 아들을 다시 살려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하나님이 경악하시면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은 완벽히 이삭을 잡아 바친 겁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속에서는 완벽하게 이삭을 바친 겁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대로 된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은혜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이삭을 통해 바다의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끝까지 가야 합니다. 모리아 산까지, 라마까지 흔들림 없이 절망하지 않고 가셔야 합니다. 내 아들을 잡아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 주신다 믿고 가셔야 합니다. 그때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다 노예로 잡혀가는 상황에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부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십시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예레미야처럼 사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