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28w: 예레미야 강해 40(렘 2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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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8일 예레미야 강해 40
본문: 렘 24:1-10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주전 587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다 왕 여고냐와 관료들과 1만 명의 용사들, 장인 1천 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안 잡혀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깊이 숨거나 돈으로 몸을 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보이십니다. 두 개의 광주리에 무화과가 가득 담겼는데, 한 광주리에는 잘 익은 무화과가, 다른 광주리에는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는 환상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보십시오. 성경에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나빠서 못 먹게 된 무화과가 오히려 유다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보기에 훌륭한 무화과는 포로로 잡혀 간 유다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죄값을 다 치르면 그 사람들을 본토로 돌아오게 해서 이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당황스러웠습니다. 자기의 해석이나 판단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볼모로 잡혀가지 않은 게 복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남아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다 흩어버리고 남의 수치거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살아남으면 칼과 전염병과 기근으로 멸절시키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급하게 겉모습만 보고 쉽게 행복과 불행을 판단합니다. 지금 무사하다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 가더라도 불행하기만 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노예살이를 하고, 옥살이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요셉만큼 불행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가리켜 ‘형통한 사람’이라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종살이를 하던 감옥에 있든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신을 당하는 상황에서 배신을 안 당하는 게 형통이고,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처지에도 감옥에 안 가는 게 형통이라고 우리는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형통이나 행복, 성공은 항상 이렇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하나도 행복하지도, 성공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실패 같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 과정이 다 복됩니다. 요셉만 보더라도 요셉의 고난이 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야곱의 가문을 구원하시기 위한 수순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백성의 두 부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로로 잡혀 가는 사람들은 불행 같지만 훗날 유다가 재기할 수 있는 뿌리로 삼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지금 유다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조롱을 당하게 하시고 결국은 멸절을 면치 못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당시 유다가 겪어야 할 환난과 시련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바벨론 포로입니다.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보다 거짓 선지자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바벨론을 통해 하나님이 유다를 매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아야 옳았습니다. 죄값을 치르는 게 옳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뇌물로 유다에 남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징계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남은 자들을 반드시 멸절하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어떤 식으로는 반드시 그들을 멸절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매를 드실 때 그 매를 피해 달아나기보다는 오히려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매를 맞으십시오. 물론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식으로 반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매 맞으며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매를 피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유다 백성 가운데 일부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며 진노하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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