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31w: 예레미야 강해 36(렘 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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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31일 예레미야 강해 36
본문: 렘 20:7-18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성전관리를 맡은 총감독 바스훌이 성전 뜰에서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붙잡아 죽도록 매질한 다음 칼을 씌워 성문 유치장에 가두었다가 그 이튿날 풀어줬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예레미야를 통해 바스훌의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의 가족, 친구들이 다 칼에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후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굉장한 상처와 충격을 받은 겁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하소연입니다. 예레미야의 속내와 인간적 갈등과 아픔이 다 쏟아져 나옵니다.
우선 예레미야는 여호와가 자기보다 훨씬 더 강하기에 설복해서 예언자의 소명을 받았다는 겁니다(7). 그런데 그 결과는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겁니다. 10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친했던 친구들마저 예레미야가 실족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냐면 여호와의 말씀 때문이라는 겁니다(8). 예레미야의 예언이 파멸과 멸망만을 선포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벨론에 유다가 투항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달게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그를 반역자라고도, 바벨론의 첩자라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그의 고향사람들, 친족까지도 협박하며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예언을 그만 둘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얘기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도 같은 괴로움을 갖고 있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태가 바로 예레미야의 처지입니다.
12절 상반절입니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이것은 예레미야가 심히 약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주님 분부대로 하고 있는데, 왜 상태는 호전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제대로 정말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또 하나는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보복해 달라는 겁니다. 12절 하반절입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지난주에는 선지자가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이 직접 나서는 것은 성서적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해결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무고한 선지자를 모욕하고 비방하더라도 선지자는 그 보복을 주께 맡겨야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처리하십니다. 주님이 처리하지 않으면 목회자는 못 견딥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예레미야가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겠습니까(14-18).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 어머니의 배가 내 무덤이 되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겁니다. 자신의 출생에 대한 저주입니다. 예레미야의 사역은 이토록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로 우리가 부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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