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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0w: 예례미야 강해 33(렘 18:1-17)

2010년 3월 10일 예레미야 강해 33
본문: 렘 18:1-17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1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14]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15] 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 [16] 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 [17]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은 토기장이 이야기입니다. 이사야에도 나오고 신약 로마서 9장에도 나옵니다. 로마서에는 명쾌한 바울 사도의 토기장이 비유가 나오는데, 오늘 본문도 그런 취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현장으로 내려가라는 겁니다.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2). 실제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작업을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토기장이가 일을 하다가 원하는 모양이 안 나오니까, 아예 뭉개버리고 전혀 다른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5절 이하입니다.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든, 아예 뭉개버리든 이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권한입니다. 유다 백성으로 말하면 그들은 토기장이의 손에 들린 진흙 한 덩이의 운명입니다. 진흙의 운명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손에 달려있는 겁니다. 하나님도 태초에 흙으로 우리 인생을 빚으셨습니다. 어떤 이는 귀한 그릇으로, 어떤 이는 투박한 그릇으로, 어떤 사람은 명품으로, 어떤 사람은 값싼 흔한 그릇으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토기장이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 이런 저런 그릇으로 만든 겁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는 왜 작은 그릇으로, 투박한 그릇으로 만들었냐며 항의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릇은 토기장이에 의해 쓰임새가 결정됩니다. 토기장이가 간장종지로 만들면 간장종지가 되는 것이고, 요강으로 만들면 요강이 되는 것이고, 밥그릇으로 만들면 밥그릇이 되는 겁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의 존재의 이유를 결정하는 겁니다. 만드는 사람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어떤 쓰임새로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행복을 누리기 위해 우리를 진흙으로 빚으신 겁니다. 우리는 항의할 수 없습니다. 토기장이가 당신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겁니다. 토기장이가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는 겁니다. 따질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기 생애의 목적을 설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에서 우리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의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잘도 정합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토기장이가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설정하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토기장이만의 권한이요 특권이며 절대 주권입니다. 많은 사람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자기 생애의 목적과 의미를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게 아니라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필요에 따라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좇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가치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영광 받으시기를 소원하십니다. 이 목적 때문에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양새가 다 다른 그릇이지만, 그럼에도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토기장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적입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그릇으로서의 자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택한 백성을 삼았다. 너는 오직 나를 따르며 내 율법만 지키며 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당시 유다의 불행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부여하신 그들이 삶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양이 나와 주지 않고 자꾸만 무너지고 일그러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포기하고 뭉갠 다음 전혀 다른 그릇으로 빚으려 하신 겁니다. 뜻을 세워 기대를 갖고 빚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어 주지 않아서 뭉개버린 겁니다. 토기장이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포기하려고 했다가 돌이켜 본래 만들려고 했던 작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7절 이하입니다.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이 징계하고 심판하겠다고 마음을 정한 후라도 회개하면 심판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다의 경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1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유다는 이제라도 돌이키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2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노골적인 반항과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이 부여한 목적대로 살지 않고 우리 뜻대로 살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기계적인 분이 아니라 인격적인 분입니다. 아무리 진노해도 우리가 회개하면 못 이긴 체 하고 돌이키십니다. 부모의 심정과 꼭 같습니다. 자식이 죽을 죄를 지었어도 싹싹 빌면 부모는 매를 거둡니다. 그런데 유다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회개를 거부한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토기장이가 일그러진 작품을 뭉개버리듯이 그렇게 심판을 당했습니다. 13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과 결혼 계약을 맺은 처녀 이스라엘이 가증한 일을 행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우상과 놀아난 겁니다. 그러면서 14절을 보면 레바논의 눈을 언급합니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레바논의 눈은 헬몬산의 눈을 가리킵니다. 헬몬산은 해발 3000미터가 넘어서 만년설이 있습니다. 헬몬산 꼭대기의 만년설처럼 변함없이 하나님과의 계약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유다 백성이 그 계약을 파기하고 우상과 눈이 맞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원수 앞에서 동풍이 불듯 흩으시겠다고 합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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