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17w: 예레미야 강해 30(렘 1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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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7일 예레미야 강해 30
본문: 렘 16:1-15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3] 이 곳에서 낳은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머니와 그들을 낳은 아버지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오니 [4]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묻어 주지 않아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리라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초상집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사랑을 제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머리털을 미는 자도 없을 것이며 [7] 그 죽은 자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자와 떡을 떼며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사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게 할 자가 없으리라 [8] 너는 잔칫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 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10]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선포하심은 어찌 됨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냐 하거든 [11]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12]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하고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13]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 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가장 기본적인 애경사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금하시는 대목입니다. 결혼은 자연스런 순리인데 하나님은 못하게 하십니다. 왜냐면 4절입니다.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묻어 주지 않아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리라.” 행복하자고 자식을 낳기도 하는데, 행복은커녕 칼과 기근으로 죽는데도 그들을 묻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자식을 낳아보았자 험한 꼴만 당한다는 겁니다. 5절을 보면 초상집에도 가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면 큰 자든 작은 자든 귀한 자든 천한 자든 다 죽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평강을 빼앗고, 인자와 사랑을 철회하는 저주이기에 초상집에 가서 울어 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죽음이라면 그들을 위로하는 게 맞는데, 그런데 지금 유다가 당할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잔치집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8). 왜냐면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에 기뻐하는 소리가 비명과 탄식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괜히 잔치집에 가서 험한 광경을 보지 말라는 겁니다. 이 시대에 그런 꼴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다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전했더니 유다 백성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10절입니다.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선포하심은 어찌 됨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냐 하거든.” 왜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저주를 선포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11절입니다.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이렇게 우매합니다. 자기들의 하는 짓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들이 우상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유다는 이방신을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우상에게 절한 겁니다. 한 번도 하나님을 등진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성전에서 바알도 같이 섬긴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버렸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사실입니다.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우상을 섬긴다면 사실상 하나님을 버린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너희는 과거의 너희 조상보다 더하다는 겁니다. 12절입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하고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래서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 이방 땅에서 이방신을 섬기게 하겠다고 합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이방신 섬기는 게 그렇게 좋으면 그렇게 해보라는 겁니다. 주야로 이방의 신을 섬겨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70년간 바벨론의 종살이를 하며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은 죄악 때문에 유다는 전쟁과 전염병으로 심판을 당했습니다.
유다는 그럼에도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서 그들의 죄값을 치르면 그들을 다시금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하나님이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혹독하게 매질하시는 것은 죽으라고 때리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가혹한 징계라 할지라도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깨닫고 새 출발하게 하시는 겁니다.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징계하시는 겁니다. 진짜 죽으라고 때리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따라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벌하시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으라고 때리시진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매가 가혹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14-15절의 말씀은 바로 이 뜻입니다.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견인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어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택하신 당신 백성을 버리려는 징계나 심판은 없습니다. 천국까지 이끄시는 하나님의 견인입니다. 유다 백성 같은 경우는 70년을 지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회시킨 겁니다. 그러나 영영 버리자는 것은 아니라 그렇게 해서라도 천국까지 견인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회복과 견인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맹세하신 그대로 가나안으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해 들이십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이런 하나님을 몰라서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양면성을 놓치지 않아야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 집니다. 하나님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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