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2w: 예레미야 강해 05(렘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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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2일 예레미야 05
본문: 렘 2:9-19
[9]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14]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15]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16]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싸우다는 히브리말로 ‘리브’라고 하는데, 법적 싸움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유다에게 법적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이어지는 10-11절입니다.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깃딤 섬들은 팔레스틴 서쪽에 있는 오늘날의 키프로스입니다. 게달은 아라비아 사막 동쪽에 있는 유목민 입니다. 그러니까 서방이나 동방 어디든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라고 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섬기던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는지를 알아보라는 겁니다.
유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기소 당한 것은 두 가지 입니다. 두 가지 비유로 나옵니다. 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게 바로 유다가 기소당한 죄목입니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임은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갔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첫째 죄목입니다. 사람은 물 없이 못 삽니다. 인체의 70%가 물이고, 막 태어났을 때는 90%가 물이라고 합니다. 1%가 부족하면 갈증이 나고, 5%가 빠지면 정신을 잃고, 10%가 빠져나가면 죽는다고 합니다. 팔레스틴은 물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생수의 진정한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갔는데, 어떻게 갔냐면, 2장 23-24절을 보면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과 같았으며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유다가 기소를 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주는 물은 영원한 생수이기 때문이다고 합니다. 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요 7:38)고 합니다. 요즘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 있는데, 그 사람들이 결국 영혼이 황폐하게 되고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유다가 지금 그 꼴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미친 듯이 우상에게로 달려간 겁니다. 생수가 없으면 살 도리가 없는 나라에서 생수이신 하나님을 버린 겁니다. 바알이나 아세라는 지독한 신입니다. 집요하게 끝까지 이스라엘을 미혹합니다.
왜 유다가 미친 듯이 바알과 아세라에게 달려갔을까요? 바알과 아세라는 현세적인 복을 약속하는 신입니다. 지극히 세속적인 신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요구하는 신입니다. 현세보다는 내세의 복을 약속하는 분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 삶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예배의식을 보면 굉장히 성적으로 문란합니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는 신입니다. 바알은 원래 비를 주관하는 신이어서 풍요의 신입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비를 주관하니 풍요의 신입니다. 아세라는 바알의 아내로서 출산을 맡은 신입니다. 고대 사회는 다산이 최고의 복입니다. 풍요와 다산을 보장하는 신이니 얼마나 현세적인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내세적이고 도덕적인 하나님보다 풍요와 다산을 보장하는 바알과 아세라가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바알과 아세라 사이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요즘 우리도 복을 좋아합니다. 복이 종교의 본질은 아닌데 거기에 기대를 겁니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교리, 죽어서 좋은 데 가며 영원히 산다는 것은 막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자 되고, 병이 낫고, 자녀가 잘된다고 해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러면 바알과 아세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현세적인 복이 필요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젯밥을 위해 제사를 지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 신앙의 본질은 영혼구원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기복과 구복으로 기웁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본질을 잃었다고 비판 받습니다.
유다의 두 번째 죄목은 웅덩이를 팠는데 터진 웅덩이를 팠다고 합니다. 당시 하나님은 유다가 자신만을 의지하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의지했습니다. 앗수르와 애굽과 군사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덜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느슨해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막강한 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은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랬습니다. 15절입니다.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여기서 어린 사자는 젊은 앗수르입니다. 신흥제국 앗수르입니다. 유다가 하나님 약속만 믿기에는 너무 불안했기에 전국에서 금을 모아 앗수르에게 바치며 동맹을 맺었는데, 앗수르는 금만 받아 챙기고 오히려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앗수르가 이렇게 황폐하게 한 겁니다. 그래서 다시 애굽과 동맹을 맺는데, 그 애굽 조차도 유다의 정수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16절을 보면,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라고 하는데, 놉과 다바네스가 애굽을 가리킵니다. 독일어 성경을 보면, 정수리를 으깼다고 나옵니다. 결국 유다가 웅덩이를 팠는데, 물 한 방울 못 모아두는 터진 웅덩이를 판 겁니다. 18절입니다.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시홀의 강물은 나일강을, 앗수르로 가는 강물은 유브라데 강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해갈하였느냐는 겁니다. 결국 앗수르와 애굽에 망하지 않았냐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17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하나님은 한 번도 잘못한 적이 없는데 유다가 심판을 자초했다고 하십니다. 19절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를 버림이 악이고,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게 고통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교훈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한다.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지당한 말씀입니다. 결국 유다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습니다. 19절의 말씀은 생생한 하나님의 육성입니다. 서명까지 하십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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