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1w: 히브리서 강해 20(히 1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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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1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20
본문: 히 11:8-12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지난주에는 노아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믿음의 선각이요 조상인 것은 세상이 다 압니다. 그러나 사라가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인줄은 잘 모르는 듯합니다. 다만 아브라함의 그늘에 가려져서 사라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듯합니다. 어쨌든 사라도 히브리서 11장 곧 믿음장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사라에게 딸이 있었습니까? 90세에 낳은 이삭이 그녀의 독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라에게도 딸이 많았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6절을 보면 우리 믿는 자들이 다 그녀의 딸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란 뜻이고,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요, 사라의 믿음의 딸입니다.
사라도 처음부터 믿음의 선진은 아니었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는다는 소식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7장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라고 합니다. 창세기 18장 12절을 보면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라 사이에 웃음 논쟁이 벌어집니다. 창세기 18장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안 웃었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때가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웃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허망합니다. 어떻게 100세 된 사람이 아이를 낳습니까? 어떻게 숫처녀가 아들을 낳습니까?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현실, 비이성적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과 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웃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은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마냥 회의와 의심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 이하입니다.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오늘 본문 11절입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처음에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웃었을지라도 그들은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의 약속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벅차고 아무리 부담스러운 말씀일지라도 사라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 말씀을 용납하십시오. 그 약속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수용하십시오. 그래야 복되며, 그 약속대로 내게 이루어집니다. 보십시오. 구십 세 된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끝까지 믿지 않고 회의하며 버티었다면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훌륭한 열국의 아비요 어미가 된 과정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처구니없어 실소를 금치 못했던 과정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불쾌해 하시며 왜 비웃느냐며 따지기까지 했던 과정도 있고, 거기에 맞서 안 웃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던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까지 걸린 년 수는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은 76세에 약속을 받고, 100세에 이삭을 얻고, 이후 14년 후에 이삭을 바칠 수 있는 수준의 믿음을 아브라함은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40년은 걸린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이 이제야 네 믿음을 믿겠다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브라함도 그의 이름 이전에 아브람의 기간이 있었고, 사라도 그 이름 이전에 사래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에도 진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과 사라도 하나님의 성에 안 찼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믿음은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최후 시험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이미 우리는 보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처음에는 얼마나 난감했을까요? 저 지구 한 귀퉁이에 사는 100세, 90세 된 사람을 놓고 열국의 아비니 어미니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고,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한 약속입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믿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철저히 이행하셨습니다. 이삭을 주셨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스라엘의 조상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믿는 자들의 아비요 어미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의 모든 축복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효시이고, 복의 근원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가계에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셨는지를 확인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약속 같지만 결국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신 약속을 하나님은 다 이행하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아브라함을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후손이 이미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지 않습니까?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이상의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말씀을 신뢰하는 자에게 상을 베푸시는 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유치하다고 합니다. 세상의 상은 유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다릅니다. 그 상은 정말 궁극적이고 영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는 자에게 상을 베푸는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아브라함과 사라가 받은 복을 살펴보십시오. 믿음에는 반드시 엄정한 보상과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굳게 붙잡으십시다. 주님께는 늦거나 이른 때가 없습니다. 90세든 100세든 문제가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포기하지 않기만 하면, 반드시 이삭을 주십니다.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의 반열에 서십시다. 어떤 말씀도 그게 하나님의 약속인한 비웃지 말고, 회의에만 빠지지 말고 성실하게 믿읍시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신 이상 그분의 약속과 다짐도 그렇게 큰 확신으로 받아들이고, 일찍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누리고 받았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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