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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w: 히브리서 강해 11(히 6:9-18)

2008년 11월 12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11
본문: 히 6:9-18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주에는 대단히 난해한 주제이고, 이견도 많고, 해석도 분분한 짐짓죄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6장 4절 이하를 보면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짐짓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주에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짓는 죄가 바로 짐짓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구도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는 면에서 이 구절은 거룩한 협박이지 문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6장 4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의 협박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아무리 구원받은 사람이라 해도 짐짓죄를 지으면 다시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성서적으로 옳으냐, 이것이 성경의 본래 가르침이냐 했을 때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커진다는 겁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작품인데, 짐짓죄로 다시 버림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실패할 수도 있기에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구원이 우리의 믿음, 헌신, 회개의 산물이라면 왔다갔다 할 수 있으나, 구원, 선택, 예정은 하나님의 고유한 작품이기에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되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원하심, 절대성이 망가집니다. 죄가 아무리 독하고 파괴적이라 해도 하나님이 이루신 완전한 구원을 손상시킬 수는 없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손상된다면, 로마서 8장의 말씀 ‘누가 능히 택하신 우리를 정죄하리요’라는 말씀이 어떻게 되느냐는 겁니다. 짐짓죄만큼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짐짓죄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무섭다는 짐짓죄조차도 절대 우리의 구원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본래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원래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물론 복음을 믿은 사람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잠시 움을 틔우다가 본색을 드러낸 케이스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밭에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지 않은 가라지도 자랍니다. 같은 혜택과 조건을 누리며 알곡과 함께 가라지는 자랍니다. 아무리 옥토에 뿌린다고 해도 씨앗은 옥토에만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택함 받지 못한 길가에도, 가시밭에도, 돌밭에도 떨어집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도 각종 잡동사니가 다 걸립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만 하늘의 비췸,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도 내세의 능력을 맛볼 수 있고, 성령의 은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울이나 가룟유다처럼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주인의 곡간까지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가라지가 더 잘 자라 보이나 가라지는 가라지이지 알곡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6절 하반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8절에서는 결국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아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고 합니다. 짐짓죄가 왜 무서운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9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은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하지만, 너희는 다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는 겁니다. 히브리서는 유대교를 신봉하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에게 보낸 서신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이 짐짓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강경하게 위협하고 있는 겁니다. 8절까지가 혹독한 채찍이었다면, 9절부터는 당근입니다. 10절에서는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라고 합니다. 11절에서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한다”라고 합니다. ‘소망의 풍성함’은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강하게 위협하고 경고한 이유가 바로 ‘너희가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고 있습니다. 13절 이하입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복을 약속하십니다. ‘복주고 번성케 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아브라함의 그 이후의 행복은 어떠했습니까? 그런 소명과 복을 받는 사람에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음에도 여종인 하갈을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했습니다. 애굽에 가서, 그랄에 가서 신변에 위협이 닥치자 아내 사라를 누이로 속여 아비멜렉 이라는 그랄 왕에게 헌상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받은 아브라함이었지만 그 행보가 완전하거나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휘청거리고, 뒷걸음질도 쳤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첩으로 맞았다는 것을 건수로 해서 당신의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찍이 약속하신 그대로 아브라함에게 다 이행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에게 그 뜻이 절대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을 통해 보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하나님이 절대 변개치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아브라함은 휘청거렸지만, 하나님은 한결같으셨습니다. 당신의 약속과 맹세를 끝까지 관철하셨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입니다. 당신의 맹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루시고 관철하십니다. 하나님의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은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둘째는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맹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맹세입니다. 짐짓죄를 지었다 해도 이것을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분의 약속이요 맹세이기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이 사실을 확신하라는 겁니다.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짐짓죄를 짓고 살지만 아브라함의 예를 보고 위로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도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변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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